축구국가대표팀 주장 손흥민(오른쪽)이 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진행된 팔레스타인과 2026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사전 기자회견 도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은 홍명보 감독. 상암|김종원 기자 won@donga.com
꼭 10년 전이다. ‘홍명보호’는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2014브라질월드컵 조별리그를 1무2패로 마쳤다. 러시아와 1-1로 비겼으나, 승점 제물로 여긴 알제리에 2-4로 완패했다. 이어 벨기에에도 0-1로 무릎을 꿇었다. 명확한 전략 실패였다.
당시 축구국가대표팀 막내 손흥민은 땅을 치며 펑펑 울었다.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은 그는 알제리전에서 0-3으로 뒤진 후반 15분 추격골을 넣었으나, 흐름을 돌릴 순 없었다. 그렇게 홍명보 감독과 손흥민은 이별했다.
그때만 해도 몰랐다. 돌고 돌아 대표팀에서 다시 만날 것이라곤 상상할 수 없었다. 올해 7월 홍 감독은 2023카타르아시안컵 실패로 경질된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의 뒤를 이어 다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흘러간 세월만큼 많은 게 바뀌었다. 홍 감독의 머리는 어느새 희끗희끗해졌고, 그에게 안겨 울던 손흥민은 3회 연속 월드컵에 출전한 베테랑이자 주장으로 성장했다. 당대 최고의 선수들이 모이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득점왕까지 경험했다. 홍 감독이 취임 직후 유럽에서 활약하는 주요 선수들을 면담했을 때 가장 먼저 만난 이도 손흥민이었다.
홍 감독과 손흥민은 3일 대표팀 임시 캠프가 차려진 고양에서 재회했다. 5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팔레스타인과 2026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1차전을 이틀 앞두고였다. 현 대표팀에서 ‘10년 전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이는 손흥민과 김영권(울산 HD)뿐이다.
홍 감독은 4일 열린 사전 기자회견에서 곁에 앉은 손흥민을 바라보며 “10년 전 한국축구의 미래를 짊어질 선수라는 평가를 받은 선수가 모두의 기대대로 잘 성장해줬다. 이제 많은 것을 짊어지고 있다. 우리의 바람이 그대로 이뤄졌다”며 뿌듯해했다. 그러면서 “손흥민이 불필요하게 가진 책임감과 대표팀에서 무게(짐)를 나눠주겠다”고 제자를 배려했다.
경험에서 우러난 따뜻한 메시지다. 홍 감독도 대표팀 주장으로 2002한·일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다. 누구보다 완장의 무게를 잘 안다.
손흥민도 화답했다. “카리스마로 대표팀을 휘어잡는 감독님 스타일을 존중한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 선장이다. 굳이 부드러울 필요가 없다. (홍 감독의) 규율은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된다.”
북중미월드컵은 10년 만에 다시 뭉친 둘이 함께할 마지막 무대가 될지 모른다. 30대 초반의 손흥민에게 6년 뒤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향한 첫걸음이 다시 시작됐다. 물론 ‘스텝 바이 스텝’이다.
상암|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