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과 2026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홈 1차전을 하루 앞둔 4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대표팀 선수들이 몸을 풀기에 앞서 코칭스태프와 짧은 미팅을 하고 있다. 상암|김종원 기자 won@donga.com
말쑥한 정장 차림의 장정들이 트렁크를 끌고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 정문에서 삼삼오오 걸어왔다. 짧지 않은 거리를 걸어 숙소동 입구로 들어선 뒤에는 큰 목소리로 스태프에게 예의바르게 인사했다.
2014브라질월드컵을 1년여 앞둔 11년 전 ‘홍명보호’의 소집 풍경이다. 취임 일성으로 ‘원팀-원스피릿-원골’을 선언했던 홍명보 감독이 요구한 것은 ‘드레스 코드’만이 아니었다. 소집기간 공식 일과 때는 팀원 모두 복장을 통일했다. 티셔츠 상의가 바지 밖으로 나오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세월이 흘렀다. 홍 감독은 2026북중미월드컵에 도전하는 대표팀 지휘봉을 다시 잡았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이 물러난 뒤 임시 사령탑 체제를 거친 태극전사들은 팔레스타인(5일·서울월드컵경기장)~오만(10일·무스카트)과 북중미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B조 1, 2차전을 치르기 위해 다시 뭉쳤다.
수월한 여정을 개척하기 위해 반드시 전승을 거둬야 할 9월 2연전 준비차 고양의 한 호텔에 임시 캠프를 차리고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훈련한 대표팀에는 딱딱함이 없었다. 떠들썩한 웃음과 유쾌한 대화가 가득했다.
여기에는 홍 감독의 변신이 있었다. 과거 ‘부러지지 않던’ 남자가 지금은 ‘부드러운’ 남자로 바뀌었다. 홍 감독은 “선수들이 선을 잘 지키며 경기에 전념할 수 있는 팀 분위기와 문화를 만들겠다. 자율 속에서 자연스러운 규율을 좋아한다. 선수들이 명확하게 알 수 있는 기본 카테고리만 지켜지면 된다”고 밝혔다.
역대 최강의 전력을 갖췄음에도 최근 대표팀에선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2022카타르월드컵 직후에는 개인 트레이너 동반 논란이 불거졌고, 2023카타르아시안컵 직후에는 일부 선수들의 물리적 충돌과 카드도박 사실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를 거쳐 울산 HD를 이끌며 현장으로 복귀했던 홍 감독도 일련의 사태를 당혹스럽게 지켜봤다.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뒤에는 약간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여겼다. 다행히 선수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베테랑 미드필더 이재성(마인츠)는 “처음엔 무서웠는데 소문과 달리 자상하다. 규율보다 선수들의 의견을 존중해준다”고 말했고, 엄지성(스완지시티)은 “카리스마가 강한 분인데 막상 대표팀에서 만나보니 멋지다고 느꼈다”며 밝혔다.
“시대가 바뀌었고, 세대도 달라졌다. 나도 많은 경험을 했고, 배웠다. 외적으로, 내적으로 성장했다. 선수들이 편히 지낼 방법을 찾고 있다”는 게 홍 감독의 설명이다.
상암|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