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팀 참가 선수들이 지난 9월 29일(현지시간) 캐나다 몬트리올의 로열 몬트리올 골프클럽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 정상에 올라 우승컵을 가운데 두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미국팀은 최종 승점 18.5를 기록해 11.5의 인터내셔널팀을 꺾고 우승하며 10연승을 기록했다. 통산 전적도 13승1무1패로 압도적 우위를 이어갔다. 몬트리올(캐나다) ㅣAP 뉴시스
그러나 브래들리의 퍼팅은 아슬아슬하게 빗나갔다. 혹시 승리를 다음 홀로 미루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캔틀레이가 14.5점을 만들고, 자신이 다음 홀에서 미국팀 승리를 확정 짓고 싶었을까? 2홀을 남겨두고 있었기에 한 홀만 비겨도 승리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인터내셔널팀의 김시우가 진 9월 29일(현지시각) 캐나다 몬트리올의 로열 몬트리올 골프클럽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 마지막 날 18번 그린에서 버디를 놓치고 있다. 김시우는 키건 브래들리(미국팀)에게 1홀 차로 패해 총 2승 2패를 거뒀고 인터내셔널팀은 미국팀에 최종 7점 차로 패하며 우승을 넘겨줬다. 몬트리올(캐나다) ㅣAP 뉴시스
하지만 김시우는 만만하지 않았다. 그는 17번 홀에서 버디를 기록했고, 18번 홀에서 세컨샷을 다시 핀 가까이에 붙였다. 김시우가 버디를 기록하면 브래들리의 계획은 엉클어질 수밖에 없었다. 승리를 확정 짓는 영광은 뒷조 선수에게 돌아가고, 마지막 세 홀에서 패하면서 결정력 없는 선수라는 인상만 남길 수 있었다. 김시우가 네걸음 퍼팅을 놓친 것은 브래들리에게는 천만다행이었다. 브래들리의 승리로 미국팀은 15.5점을 채웠다. 그는 특별한 세리머니를 하지 않고, 동료를 뜨겁게 안고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인터뷰에서 그는 지난 10년간 미국팀 선수들과 함께하는 순간이 너무나 그리웠다고 말했다.
이것은 미국팀에게 큰 의미를 가졌다. 브래들리는 2014년 라이더컵에서 유럽팀에게 승리를 넘겨주는 패배를 당했다. 그가 이겼다면 미국팀은 적진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그의 패배는 큰 상처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브래들리의 2014년 라이더컵 가방은 풀리지 않은 채로 집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2023년 라이더컵에서 브래들리는 라이더컵에 출전할 수 있는 상위 12명에 포함되었지만, 캡틴인 잭 존슨의 선택을 받지 못하고 눈물을 삼켰다. 잭 존슨은 2014년 이후로 라이더컵이나 프레지던츠컵에 나간 적 없는 브래들리 대신에 경험이 많은 저스틴 토마스를 선택했다.
로마에서 열린 라이더컵을 패한 미국은 2025년 미국에서 열리는 라이더컵 캡틴으로 브래들리를 선택했다. 이 결정은 미국과 유럽 골프 팬 모두를 놀라게 했다. 브래들리는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니고, 카리스마가 있거나 리더십이 확인된 선수도 아니다. 프로선수로서 커다란 업적을 쌓은 것도 아니다. 미국이 브래들리를 캡틴으로 정한 것은 그가 라이더컵이 열리는 베스페이지 블랙코스 근처에 있는 세인트존스 대학을 졸업했기 때문이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풀스윙’에 방영된 풀지 않은 가방이 골프 팬에게 큰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라이더컵 캡틴으로 선정되면서 미국 선수들에게 변화가 생겼다. 지명도에서 밀리는 선수도 라이더컵에 출전할 가능성이 커졌다. 랭킹이 높은 선수를 제치고 쉽게 선발되었던 저스틴 토마스가 특히 긴장했다. 그리고 그의 경기력은 브래들리 캡틴 선정 이후에 좋아졌다. 세상에 모티베이션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미국 대표팀 주장 짐 퓨릭(왼쪽 두 번째)과 선수들이 프레지던츠컵에서 우승한 후 샴페인을 마시며 축하하고 있다. 몬트리올(캐나다) ㅣAP 뉴시스
브래들리는 이번 대회에 짐 퓨릭 캡틴의 추천으로 참여했다. 짐 퓨릭은 그를 싱글매치 중간에 배치했다. 이미 4점을 앞서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에 나서는 선수가 팀 승리를 확정할 가능성이 높음을 짐 퓨릭이 고려했음 직했다.
만약에 16번 홀 그린에 선 브래들리가 퍼팅이 들어가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전략가다. 미국은 그의 전략적 능력을 이미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그 정도로 전략적이라면, 2025년 라이더컵에서 유럽팀이 미국팀을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홈팀은 경기순서와 코스 셋업 등을 결정하는 유리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프레지던츠컵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점수가 18.5 대 11.5로 차이가 났지만, 내용은 팽팽했다. 언더독인 인터내셔널팀은 투쟁심이 좋았고 화제의 장면을 많이 만들었다. 한국 선수의 활약도 뛰어났다. 미국팀은 탑독답게 중요한 순간에 결정력을 보여 주었다. 무엇보다 내년도 라이더컵과 연결되는 스토리를 만들면서 대회를 마무리한 것이 미국팀이 얻은 가장 큰 성과다. 그들은 약자를 자극하지 않으면서 스토리를 만들 줄 알았다.
미국팀과 인터내셔널팀 간의 작은 갭이 느껴진 대회였다. 메울 의지가 있는 갭이 있는 것은 축복이다.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세한 갭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행복할 수는 있어도 발전할 수는 없다.
윤영호 골프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