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화산암, 붉은 토양과 사암, 파스텔톤 반사막 식물, 녹색 페어웨이와 그린, 푸른색 하늘과 회색빛 구름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블랙 데저트 골프코스. 사진제공 ㅣ PGA투어
명문 링크스 골프코스는 많은 스토리와 깊은 역사가 있지만 황량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멋진 바다 경관을 가진 링크스코스가 드물게 있지만, 대부분의 링크스코스는 어찌 보면 때로는 사막 같다. 황량한 링크스코스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서양금작화 또는 들까치 나무로 불리는 고스(gorse)다.
고스는 가시덤불 관목으로 봄에서 여름까지 노란 꽃을 피워 링크스 코스에 색감을 더한다. 노란 꽃이 지고 나면 짙은 녹색의 고스는 멀리서 보면 검게 보인다. 흐린 날씨에는 더욱 그렇다. 고스가 검게 보일 때조차도 녹색 또는 갈색 페스큐 잔디와 잘 어울려 멋진 색의 대조를 이룬다.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달리 고스는 골퍼에게는 골치 아픈 존재다. 골프공이 고스에 들어갔을 경우 공을 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고스는 골퍼에게만 문제가 아니라 코스 매니저에게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링크스 코스를 가지고 있는 로열 도녹 골프클럽의 캡틴인 데이비드 벨은 고스의 성장 속도에 혀를 내두른다. 숲을 이루고 있는 현재의 고스는 자신이 어릴 적 보았던 고스보다 10배가 넘는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고스가 빠르게 영역을 확장한다는 의미다.
링크스 골프코스에 있는 고스와 같은 가시덤불류를 스크럽이라고 부른다. 스크럽의 뿌리에 기생하는 박테리아는 질소고정을 일으킨다. 질소고정이란 대기 중에 있는 질소가 암모니아와 같은 질소화합물로 변하는 과정을 일컫는다. 가시덤불류 관목이 만드는 질소화합물로 인해서 토양은 염기성으로 변하는데, 중성과 약산성에서 잘 자라는 링크스 코스의 잔디는 염기성 토양에서 경쟁력을 잃고 가시덤불류 관목에 자리를 내준다. 링크스 골프코스 코스매니저의 주된 과제 중 하나는 스크럽 확장을 제어하는 일이다. 아름다움과 잔디 보호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당량의 고스가 필요한데, 고스의 빠른 성장은 코스 매니저의 방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PGA투어는 투어챔피언십을 마지막으로 정규시즌을 마감했다. 지금은 주요 선수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정규시즌 하위권 선수들과 2부리그인 콘페리 투어 상위권 선수들이 출전하는 페덱스컵 가을시즌을 진행하고 있다.
블랙 데저트 골프코스는 색의 대조가 뛰어나다. 링크스 코스의 고스를 연상시키는 검은색 화산암이 인상적이다. 사진제공 ㅣ PGA투어
지난주에는 미국 유타주에 있는 블랙 데저트 골프 코스에서 챔피언십이 열렸다. 이 대회 총상금은 750만 달러, 우승상금은 135만 달러다. 우승을 달성한 매트 매카시는 4라운드 종합 23언더파 261타를 쳤는데, 그의 한 타의 가치는 5172달러가 넘었다. 최근 들어 눈에 띄게 증가한 상금 규모로 인해 가을 시즌 대회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이 대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골프 코스였다. 흰색 벙커, 녹색 페어웨이와 그린, 검은색 화산암, 파스텔톤 반사막 식물, 멀리 병풍처럼 드리워진 붉은색 사암, 푸른 하늘과 회색 구름의 색감 대조가 일품이었다. 전 세계에는 3만8000개가 넘는 골프 코스가 있는데, 블랙 데저트 골프 코스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아름다움을 골프 팬에게 선사했다.
눈에 띄는 특징은 검은색 화산암이 링크스코스의 고스처럼 보였다는 점이다. 화산암은 여름에 노란 꽃을 피우지 않기 때문에 고스보다는 생동감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노란 꽃은 피지 않아도 좋다. 골프 코스에는 이미 많은 색이 있고, 그 색은 잘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화산암은 햇빛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데, 강한 태양 아래서는 짙은 검은색을 띠지만, 저녁 무렵에는 은은한 붉은 빛을 내뿜기도 한다. 주변의 붉은 사암과 함께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색감은 코스에 역동적 생명력을 부여한다.
거칠고 불규칙한 표면을 가진 화산암 사이에 골프공이 떨어지면 선수들은 고스 덤불 속에 공이 들어간 것처럼 어김없이 한 타 또는 두 타를 잃는다. 바위틈 사이에서 풀 스윙을 할 수 있는 재간은 없기 때문이다. 고스처럼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며 잔디를 몰아내는 일이 없기 때문에 코스 매니저가 골치를 썩일 일도 없는 것이 화산암의 또 다른 장점이다.
블랙 디저트 골프 코스는 완공된 지 2년도 채 되지 않았다. 리조트 시설은 아직도 완공되지 않았지만,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벌써 PGA투어 대회를 개최했고, 내년도에는 LPGA 대회를 개최한다. 오래도록 기억되는 가치 있는 전통이라는 의미로 레거시(legacy)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레거시를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드는 것이란 깨달음을 블랙데저트 골프 코스가 보여 주고 있다.
윤영호 골프칼럼니스트
윤영호 ㅣ 서울대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증권·보험·자산운용사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했다. 2018년부터 런던에 살면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옵션투자바이블’ ‘유라시아 골든 허브’ ‘그러니까 영국’ ‘우리는 침묵할 수 없다’ 등이 있다. 런던골프클럽의 멤버이며, ‘주간조선’ 등에 골프 칼럼을 연재했다. 현재 골프에 관한 책을 집필 중이다.
연제호 기자 sol@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