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한 흥국생명 김연경(왼쪽)을 볼 시간이 점점 줄고 있다. 흥국생명이 잘할수록 그의 은퇴 시계는 빨라진다. 사진제공|KOVO
기막힌 아이러니다. 특급 스타의 환상적 퍼포먼스를 더 많이 보고 싶은데, 잘하면 잘할수록 이를 지켜볼 시간은 더 줄어든다.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라스트 댄스’를 시작한 ‘배구 여제’ 김연경(37·흥국생명)을 향한 팬들의 복잡한 감정이다.
김연경은 13일 인천삼산월드체육관에서 열린 GS칼텍스와 ‘도드람 2024~2025 V리그’ 여자부 정규리그 5라운드 홈경기(흥국생명 3-1 승)를 마친 뒤 “이번 시즌이 끝난 뒤 팀 성적과 관계없이 코트를 떠난다. 정상급 기량을 갖고 있을 때 떠나는 게 맞다고 봤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으나, 많은 분이 내 마지막 경기를 봐주셨으면 한다”고 밝혔다.
2005~2006시즌 V리그 여자부 신인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하며 프로로 데뷔한 김연경은 2021년 개최된 2020도쿄올림픽을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 데 이어 2024~2025시즌을 끝으로 국내외를 오간 화려하고 찬란했던 선수 생활에도 마침표를 찍는다.
이제 관심은 코트에 선 김연경을 얼마나 더 볼 수 있느냐인데, 은퇴 시계는 야속하게도 점점 빨라지는 모양새다. 요즘 소속팀이 너무 잘하고 있어서다. 흥국생명은 16일 화성종합체육관에서 벌어진 IBK기업은행과 원정경기에선 세트스코어 3-0 완승을 거뒀다.
모든 개인기록 지표에서 최상위권을 지켜온 김연경의 ‘에이스 본능’이 다시 한번 번뜩였다. IBK기업은행을 상대로도 14득점, 공격 성공률 56.00%를 기록하며 승리를 이끌었다. 9연승을 질주한 선두 흥국생명은 24승5패, 승점 70으로 정규리그 우승에 바짝 다가섰다. 지금의 상승세를 이어가고, 2위권을 형성한 현대건설-정관장과 격차를 유지하면 6라운드 초반에는 챔피언 결정전 직행 티켓을 거머쥘 가능성이 크다.
흥국생명은 21일 수원체육관에서 펼쳐질 현대건설과 5라운드 원정경기를 포함해 정규리그 종료까지 7경기만을 남겨놓고 있다. 챔피언 결정전(5전3선승제)을 더해도 최대 12경기다. 그러나 마르첼로 아본단자 감독이 ‘왕좌의 게임’을 앞둔 시점에 결과가 굳이 필요 없는 정규리그 잔여 레이스에 전력을 기울일 이유는 전혀 없다. 김연경은 컨디션 점검과 경기력 유지 차원에서 짧게 투입하는 형태로 남은 일정을 소화할 수 있다.
물론 김연경은 가장 아름답게, 또 정상에서 배구 인생의 한 장을 마감하는 그림을 가슴에 품고 있다. 흥국생명의 통합우승도, 챔피언 결정전 우승도 2018~2019시즌이 마지막이다. 아본단자 감독과 김연경이 호흡한 2022~2023, 2023~2024시즌에도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팬들과 시간이 조금 줄더라도 김연경으로선 체력 소모와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는 편이 낫다. ‘배구 여제’의 은퇴 시곗바늘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남장현 기자 yoshike3@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