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셔틀콕 여제’ 안세영이 17일(한국시간) 영국 버밍엄 유틸리타 아레나에서 끝난 2025전영오픈에서 여자단식 우승을 차지한 뒤 기뻐하고 있다. 2년 만에 정상을 탈환하며 세계 최강다운 위용을 뽐냈다. 사진제공|대한배드민턴협회
‘셔틀콕 여제’ 안세영(23·삼성생명·세계랭킹 1위)이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2017년 말 광주체중 3학년 때 국가대표 선발전 1위로 태극마크를 달며 화려하게 등장한 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22항저우아시안게임과 2024파리올림픽에서 잇달아 여자단식 금메달을 수확한 뒤로는 경쟁자들과 격차를 더욱 벌리고 있다.
안세영은 17일(한국시간) 영국 버밍엄 유틸리타 아레나에서 끝난 2025전영오픈 결승에서도 왕즈이(중국·2위)를 게임스코어 2-1(13-21 21-18 21-18)로 따돌리고 2년 만에 정상을 탈환했다. 허벅지 부상을 앓은 지난해 3위에 머물고, 올해도 무릎 부상 여파에 시달렸지만, 기어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로써 안세영은 말레이시아오픈, 인도오픈, 오를레앙 마스터스, 전영오픈 등 올해 벌어진 4개 국제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20연승도 이어갔다. 그야말로 ‘안세영의 적은 안세영’이라는 말을 체감할 수 있는 흐름이다.
왕즈이와 1시간35분에 걸친 혈투를 마친 뒤 안세영의 표정은 밝았다. 그는 세계배드민턴연맹(BWF)과 인터뷰에서 “나는 전영오픈의 여왕이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피로와 통증에 시달렸지만, 결국 정상에 오른 나 자신이 자랑스럽다”고 우승 소감을 밝혔다.

안세영이 17일(한국시간) 영국 버밍엄 유틸리타 아레나에서 끝난 왕즈이와 2025전영오픈 여자단식 결승에서 2-1로 이긴 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출처|세계배드민턴연맹
●‘단식 불모지’ 한국에 희망을 선사하다!
안세영은 ‘단식 불모지’ 한국배드민턴에서 피어난 희망이다. 그동안 한국은 김동문 대한배드민턴협회장, 정소영 성심여고 감독, 길영아 삼성생명 감독, 이용대 요넥스 플레잉코치, 이경원 전 배드민턴국가대표팀 코치 등 세계 정상급 복식 선수들을 대거 배출했지만, 큰 족적을 남긴 단식 선수는 드물었다. 2004아테네올림픽 남자단식 은메달리스트 손승모, 1996애틀랜타올림픽 여자단식 금메달리스트 방수현이 ‘유이’한 올림픽 단식 입상자다.
한 배드민턴계 원로는 “단식은 복식보다 체력 소모가 크고, 선수 개개인에게 요구되는 능력도 많아 육성하기 힘들다. 복식 선수를 잘 키워놓으면, 동성복식과 혼합복식에 모두 출전시킬 수 있으니 단식 선수 육성에 소홀했던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이런 환경에서 등장한 안세영의 존재는 반갑기 그지없다. 안세영은 2018년 2월 세계랭킹 1338위로 성인무대 커리어를 시작해 2019년 11월 처음으로 톱10에 진입했다. 이어 2023년 9월 마침내 1위에 오른 뒤 단 한 번도 2위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다. 7년여 동안 그의 성장은 곧 한국배드민턴 단식의 경쟁력 성장으로 여겨졌다.
이제는 적수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너무 이른 나이에 성인무대를 밟은 탓에 커리어 초반에는 천위페이(중국·13위·11승12패) 등 정상급 선수들에게 열세를 면치 못했지만, 이후 대처법을 찾아내고는 승승장구하고 있다. 성인이 된 2021년부터는 천위페이를 상대로 11승6패로 앞선다. 가히 세계 최강이라 할 만하다.

서승재(오른쪽)-김원호가 17일(한국시간) 영국 버밍엄 유틸리타 아레나에서 끝난 2025전영오픈에서 남자복식 우승을 차지한 뒤 기뻐하고 있다. 사진제공|대한배드민턴협회
●복식 선수들과 함께 열 황금기를 기대해!
안세영의 성장은 복식 선수들에게도 큰 자극이다. 한국배드민턴 복식은 파리올림픽에서 최대 금메달 2개를 겨냥했지만, 혼합복식 김원호(26·삼성생명)-정나은(25·화순군청·15위)의 은메달로 겨우 체면치레했다. 안세영이 2008베이징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리스트 이용대-이효정 이후 16년 만에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쥔 것과는 차이가 컸다.
자연스레 파리올림픽 이후 복식 조합 전면 개편이 진행되고 있다. 초반이라 시행착오가 적잖다. 그동안 남자복식과 혼합복식을 병행한 서승재(27·삼성생명)가 남자복식에만 전념하고, 여자복식에선 베테랑 김소영(33·인천국제공항)이 태극마크와 멀어졌다.
그러나 지금의 시행착오가 나중에 결실을 볼 것이라고 확신한다. 다행히 시작치고는 결과가 나쁘지 않다. 서승재-김원호(43위)가 전영오픈 남자복식 결승에서 레오 롤리 카르나도-바가스 물라나(인도네시아·18위)를 게임스코어 2-0(21-19 21-19)으로 완파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새롭게 결성된 혼합복식의 이종민(19·삼성생명)-채유정(30·인천국제공항·290위)도 동메달을 따내며 희망을 밝혔다. 단식에서 안세영이 이끌고, 복식 선수들이 그에 걸맞은 조화를 이룬다면 한국배드민턴은 다시금 황금기를 열 수 있다.
권재민 기자 jmart220@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