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슬슬 잠이 안 오기 시작했어.”
한화 김인식(62) 감독이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짓습니다. 15일(한국시간) 하와이 호놀룰루 센트럴 오아후 리저널 파크.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전지훈련을 불과 하루 앞둔 날입니다. 노감독은 머리가 아픈지 짐짓 고개를 양옆으로 흔듭니다.
3년 전 3월. 대한민국은 들썩였습니다. 한국을 ‘한 수 아래’라고 평가하던 일본을 두 번 연속 꺾었습니다. ‘세계 최강’이라며 뻐기던 미국도 격파했습니다. 이승엽은 장쾌한 역전 2점홈런을 날렸고, 결승타를 친 이종범은 방망이를 내던지기가 무섭게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환호했습니다. 김 감독은 그 때 덕아웃에서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다시 대표팀을 지휘합니다.
하지만 많은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 땐 출정식 이후로는 순조롭게 풀렸잖아. 그런데 이번엔 뭐가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어.” 말끝에 묻어나는 한숨이 깊기만 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마무리’ 박찬호도, ‘해결사’ 이승엽도 결국 손을 내저었습니다. ‘국가대표 4번타자’ 김동주가 빠졌고, ‘핵잠수함’ 김병현은 소식도 안 들립니다. 임창용은 허리가 아프다 하고, 박진만도 몸이 안 좋답니다. 옆구리가 아프다는 박기혁의 야윈 얼굴을 바라보면서 그저 “괜찮냐”고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김 감독도 아픕니다. 왼쪽 새끼발가락에 티눈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것 때문에 며칠 동안 생고생을 했답니다. 한낱 작은 티눈 하나로도 이렇게 괴로운데, 여기까지 오는 과정은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김 감독의 심장엔 아마 수십 개의 딱지가 앉았을 겁니다.
그래도 그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왜 또 나냐’고 눈을 흘기면서도 내민 손은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일각에서는 그런 그를 이순신 장군이라 비유했습니다. 일본에 ‘사무라이 재팬’이 있다면, 우리에겐 ‘거북선 코리아’가 있다고요. 언뜻 그 얘길 꺼냈더니 김 감독이 웃습니다. “일본까지 거북선 타고 가야겠네.”
그렇게 ‘김인식호’는 다시 항해를 시작합니다. 여기저기 고칠 데 투성이지만 거친 풍랑을 이겨내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잠 못 이루는 나날이 지나면 언젠가 항해의 끝이 올 겁니다. 그 때 김 감독의 환한 미소를 봤으면 좋겠습니다.
하와이|배영은 기자 yeb@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