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 아내 “제 소원은…당신 원할 때 은퇴 하는 것”

입력 2012-08-3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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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이정민이 고난의 시절을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아내 김선영 씨의 따뜻한 격려와 지혜로운 내조 덕분이었다. 이정민이 29일 문학 SK전에 선발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2010년 결혼 당시의 이정민-김선영 커플. 문학|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트위터 @seven7sola 사진 제공|이정민-김선영 부부

롯데투수 이정민 일으켜 세운 아내 김선영씨 지혜로운 내조

딸 낳을 무렵 남편 전훈제외 고비였죠
자기는 좋아하는 야구해…돈은 내가 벌게!
꿈같은 1군…상금·벌금 ‘행복한 밀당’
험한 세상 손놓지 않아 잘 통하나 봐요


롯데 이정민(33)의 아내 김선영(32) 씨는 30일 아침 제일 먼저 은행을 찾아 송금부터 했다. 원래 37만원을 송금해야 맞는데, “3만원 더 채워 보내”라는 친정어머니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8월, 남편은 올해 2번째로 1군에 올라왔다. 처음 불려왔을 때는 1주일 만에 2군으로 돌아갔는데, 이번엔 선발로 투입됐다. 8월 18일 사직 넥센전이 첫 선발 등판이었는데 아깝게 5이닝을 못 채웠다. ‘안 되겠다’ 싶어서 김 씨는 지기 싫어하는 남편의 습성을 자극했다. “자기, 다음 선발은 1이닝 버틸 때마다 5만원씩 줄게. 그 대신 1실점할 때마다 벌금 3만원이야.”

놀랍게도 이정민은 29일 문학 SK전서 8이닝을 던졌다. 실점은 단 1점. 3254일, 그러니까 8년 10개월 26일만의 선발승리가 찾아 들었다. 남들은 감동해서 울기까지 했다는데, 정작 김 씨는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 찾아오자 덤덤해졌다. 아니, 다음 등판 걱정(?)부터 앞섰다. 남편도 평소와 똑같았다. 승리 직후 휴대폰 너머 첫 마디는 “입금해라”는 무뚝뚝한 말이었다. 어쩌면 부부란 이런 것인가 보다. 험한 세상을 오랜 시간, 손 놓지 않고 건너온 사이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무언가로 연결돼 있는 것 같다.


○팬으로 만난 남편

김 씨는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자연스레 롯데 야구와 접했다. 우연히 사직구장을 찾았던 날, 이정민을 처음 봤다. 첫 인상은 ‘잘 생겼다’였다. 관심이 생겨 알아봤더니 팬들 사이에서 인기는 별로(?)였다. “젊은 불펜투순데, 선발들 승리 날려먹는 투수야.” 그래도 콩깍지가 씌웠는지 마음이 거두어들여지지 않았다.

하늘이 점지한 인연이었는지 이정민이 상무에 입대했을 때, 개인적으로 연락이 닿았다. 만나보니 얼굴에 안 어울리게(?) 성격이 무척 순박했다. 그렇게 만났고, 3년여를 연애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 2010년 결혼했다.

결혼 후 야구선수 아내의 운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야구가 안 풀리면 괜히 자기 탓처럼 여겨졌다. 착한 남편은 내색하지 않으려 했고, 부부 사이에는 야구 얘기를 조심했다. 그렇다고 즐겁지 않은 나날은 아니었다. 천성이 낙천적인 김 씨는 “자기는 하고 싶은 야구해. 돈은 내가 벌면 돼”라며 남편을 북돋아줬다.


○복덩이 딸 지윤이

요즘 이정민의 낙은 8개월 된 딸(지윤)과 보내는 시간이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지윤이가 태어날 무렵이 투수 이정민의 최대 고비였다. 2002년 데뷔 이래 단 한해도 거르지 않았던 해외전지훈련 명단에서 제외된 것이다. 당연히 갈 줄 알고 짐까지 싸놓았다가 당한 일인지라 충격이 더 컸다. 김 씨의 배가 남산만할 때라 더 민감했다.

출산 직전까지도 김 씨는 일을 쉬지 않았다. 억척이어서가 아니라 일 자체가 재미있어서였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하듯 남편도 돈에 구애받지 않고 꿈을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이 통했는지 이정민은 경남 김해시 상동 2군 훈련장에 남아 훈련을 견뎌냈다. 이 시절 주저앉았다면 3254일만의 선발승도 없었을 것이다.


○은퇴할 수 있는 투수가 돼주길

부부가 기약 없는 2군 생활 속에서도 용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용훈(35·롯데)의 성공스토리도 자리했다. 2군 동지였던 이용훈이 긴 시련 끝에 올해 선발로 성공하자 이정민 역시 “용훈 형은 저런 늦은 나이에도 되는데, 나도 늦은 것 아니다”라고 마음을 돌려먹었다.

언젠가 남편이 “나 앞으로 뭐하지?”라고 지나가듯 걱정을 흘린 적이 있다. 이때 답했던 김 씨의 진심은 지금도 변함없다. “자기가 후회 없었으면 좋겠다. 당장 끝날 것 아닌데, 정말 끝날 것 같으면 그때 얘기해라.” 야구선수 이정민의 아내 김선영의 마지막, 유일한 소원은 하나다. “구단에서 물러나랄 때가 아니라, 자기가 원할 때 은퇴하는 선수가 되어줬으면 좋겠다.”

김영준 기자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트위터@matsri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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