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국삭발뒤엔아내가있었다

입력 2009-05-12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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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기대치는높은데팀은부진의늪…아내에바리캉쥐어주며“밀어달라”


수원 송종국의 삭발 투혼은 팀이 광주에 패하며 비록 빛이 바랬지만 동료들의 사기를 끌어올리고 팀 분위기를 다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송종국이 10일 광주전에서 볼을 따내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수원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수원삼성이 5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 가시마 앤틀러스(일본)에 0-3으로 패한 뒤 K리그 광주상무전(5월 10일)을 이틀 앞두고 합숙에 들어간 8일 오전, 클럽하우스에 들어선 선수들은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 앞에는 머리카락 한올 남기지 않고 머리를 밀어버린 송종국(29)이 서 있었다.

정작 본인은 “그냥 더워서 깎았다”고 말했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팀내 중고참으로 침체된 분위기를 어떻게든 바꿔보고자 하는 작은 몸부림이라는 걸.

○아내도 동의한 삭발 충격요법

“이렇게 머리를 빡빡 밀어본 건 성인이 된 후 처음이에요. 원래 짧은 머리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송종국의 목소리는 예상 외로 차분했다.

송종국의 집에는 가위와 일명 ‘바리캉’이라 불리는 전동 이발기계가 늘 비치돼 있다.

송종국은 평소에도 아내 박잎선씨에게 머리를 맡겨 왔는데 지난해 시즌 잠시 스포츠형으로 변화를 줬다가 주변의 반응이 영 신통치 않아 그 뒤부터는 다듬는 정도로만 잘라왔다.

하지만 가시마에 치욕적인 패배를 하고 돌아온 날, 송종국은 뭔가 다른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주저주저하던 그가 아내에게 삭발을 부탁하자 평소 같으면 극구 말렸을 박씨도 군말 없이 ‘바리캉’을 들었다.

아내는 방바닥에 쌓이는 남편의 수북한 머리카락을 보며 “오빠의 이런 모습이 팀에 꼭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힘을 실어줬다.

○“곽희주 부담 덜어주고파”

송종국은 2005년 수원 유니폼을 입었다. 송종국과 수원의 목표는 같았다. 바로 ‘우승’이었다.

수원은 그해 컵대회 정상에 올랐지만 송종국은 뛰지 못했고 리그에서는 전·후기 합쳐 10위에 그치며 플레이오프에도 오르지 못했다.

2006년과 2007년, 연거푸 우승 문턱에서 좌절을 맛본 송종국은 지난해 드디어 꿈에 그리던 우승컵을 안았다. 그것도 ‘주장’이라는 중책과 함께.

송종국은 지난해 시즌을 마친 뒤 “이제 마음의 빚을 어느 정도 갚은 것 같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하지만 우승만큼 팬들의 기대치도 커지고 팀의 목표도 높아졌다.

그런 의미에서 올 시즌 초반은 마치 2005년을 연상케 할 정도로 시련의 연속이다.

송종국은 “후배인 주장 (곽)희주가 모든 짐을 떠안은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어떻게든 희주의 부담을 좀 덜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패배의식에 젖어들지 않겠다”

수원은 10일 광주상무에 0-2로 패하며 리그 최하위까지 떨어졌다. 수원이 바닥을 친 건 2004년 9월 1일 이후 5년 만이다.

하지만 차범근 감독은 “어려움은 새로운 변화와 도약의 기회가 된다”며 오히려 선수들을 독려했다.

연이은 부진에도 팀 분위기가 패배의식에만 젖어있지 않다는 점도 다행이다.

당장 배기종은 11일 오전 훈련에 머리를 짧게 깎고 나와 ‘이심전심’임을 보여줬다. 나머지 선수들도 마음은 매한가지일 터.

송종국은 “머리를 깎고 안 깎고는 중요치 않다. 자칫 내 삭발이 이벤트처럼 보일까봐 걱정이 된다”며 “광주전에서 선수들 모두 정신적으로 준비가 잘 됐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록 지긴 했지만 좀 더 시간을 갖고 지켜봐주시면 예전의 모습을 그라운드에서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고 힘줘 말했다.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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