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조희제] ‘공부의 신’의 배두나

입력 2010-01-24 11:18:33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배두나. 자 이제 어떻게 거리를 유지할 것인가?

한동안 Y세대의 아이콘이었던 배두나가 '공부의 신'의 선생님으로 돌아왔다.


서민들을 사교육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겠다는 대통령의 훈시 덕일까요. 공교육이 학생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나 봅니다. 어느새 방송이 나서 학교교실을 합숙소로 만들고 전교 꼴지들을 몰아넣고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킵니다.

목표와 해법도 구체적입니다. '국립 천하대'를 가야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이지요.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명강사들이 총동원 됐습니다. 수학 교육계의 전설로 불리던 차기봉 선생은 이렇게 말합니다.

"툭 치면 공식이 반사적으로 나와야 한다."

개념을 이해하고, 그것을 공식이라는 틀로 만들고, 그 틀을 이용하여 문제에 적용시켜 답을 찾아낸다는 고전적 수학 공부방법을 완전히 뒤엎는 놀라운 공부 방법입니다. 문제를 이해하고 문제에 맞는 공식을 찾아낸 후 '답을 찾아라!'. 사교육을 근절시키기 위해 공교육이 선택한 방법은 사교육보다 더 사교육 같은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징적인 발언입니다.


▶ 대세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있는 '배두나 선생님'

드라마 '공부의 신'에 출연한 배두나.



이 살벌한 교육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선생님이 있습니다. 학생들보다 영작을 못하는 실력 없는 영어선생님. 아이들에게 정답을 맞추는 방법을 알려주지도 못하면서, 막연한 응원과 지지만 보내는 선생님. 오랜만에 TV로 돌아온 배두나는 이 같은 살벌한 입시 중심 교육에서는 불필요한 선생님입니다.

어느 학교에나 한 두 명은 있을 것 같은 캐릭터에 속하겠죠. 그러나 실력은 없고 사람만 좋은 선생님은 결과적으로 아이들로부터 배척을 받는 시스템이 됐습니다. '공부의 신'에서처럼 학교에서 퇴출되는 일까지는 없다고 해도, 이런 선생님들은 학생들로부터 은근히 무시당하기 마련입니다. 결국, 배두나도 그런 처절한 스토리의 희생자가 돼 버리는 걸까요?

그러나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공신'을 보며 천하대에 대한 전의를 불사를지도 모를 지금의 중고등학교 학생 시청자들은 배두나의 전력(前歷)을 알기나 할까요?

물론 그들에게는 그녀가 어떤 내공을 갖고 이 자리에 서 있는지 여부는 큰 의미가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그녀의 전력을 안다면 감히 말도 한번 붙이기 힘들어했을 정도로 화려한 포스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녀가 영화 '괴물(2006)'에서 한국사회의 모순이 응집되어 출현한 정체불명의 괴물을 향해 화살을 날려대며 맞섰던 잔 다르크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것을 알까요?


▶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뛰어다닌 찬란한 20대

아빠는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는 동안, 대학을 다녀서 먹물께나 먹고 화염병께나 던졌던 삼촌은 알 수 없는 분노와 울음을 쏟아내는 동안, 고모 배두나는 활 하나를 매고 운동복 차림으로 한강 철교를 뛰어다닙니다. 감정이나 생각보다 빠른 본능적이고 육체적 반응으로 그녀는 조카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합니다.

좀 더 옛날로 돌아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2002)'에서의 배두나는 좀 더 심각하게 등장합니다.

최근 50년 동안 한국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아나키스트 '영미'는 자본주의적 모순에 대해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잔인한 테러를 기획합니다. 망상적인 사고로 가상의 적과 가상의 아군을 만들어내고, 섹스와 연민과 혁명 그 어디쯤에서인가 복수를 기획하는 팜 파탈을 연기했던 것이 바로 배두나입니다.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무정부주의자로 등장한 배두나.


엉뚱함은 또 어떤가요? 사실 이 엉뚱함이 바로 대중들에게 각인된 배두나 본연의 캐릭터입니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와 '플란다스의 개(2000)' 두 편의 작품에서 그녀는 20대 초반이라는 혼란스러운 시기를 엉뚱함으로 헤쳐 나가는 캐릭터로 혜성같이 등장했었습니다. 크고 약간은 튀어나온, 그래서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그녀의 눈은 21세기라는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한국 20대의 눈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1999년 KBS 드라마 '학교'는 또 어떻습니까. 그는 마치 소설 데미안에 나오는 '데미안'처럼 방황하는 10대 친구들을 따스하게 품어주는 꽤 넉넉한 캐릭터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따지고 보면 배두나는 10년 만에 신비롭고도 영특한 '학생'에서 망가져 버린 병문고의 어설픈 '선생님'으로 귀환한 셈이 됐습니다).

물론 새로운 세기에 대한 불안감, 학교와 사회의 중간에 존재해야 했던 소속감 없음에 대한 불안감 또한 존재하고 있었지만 당시 세상에 첫 발을 내딘 Y세대 여성들은 배두나의 이미지를 자신과 연결시키며 세상을 탐험하기 위한 하나의 지도로 삼았었습니다.

배두나는 '엉뚱함'을 추구했던 Y세대의 아이콘이었다.



▶ Y세대가 지지한 배두나의 '엉뚱함'

그녀만큼 정체성이 불분명했던 Y세대(1970년대 후반에 태어나 21세기에 성년을 맞이한 X세대 이후 세대)가 자신들의 아이콘으로 삼기에 적절한 배우가 없었습니다. 실제 그는 자신의 20대를 매우 현명하고도 투철한 직업정신으로 헤쳐 온 한국의 대표적인 여배우 가운데 하나입니다.

배두나의 엉뚱함이 매력적이었던 것은 그 엉뚱함이 여린 20대 초반들에게 보호막으로 작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사의 가혹함은 20대라고 해서 봐주는 것이 없지요. 가혹함에 맞설 수 있는 마땅한 무기도 없는 그들은 엉뚱함이라도 있어야 실수를 가장한 실험을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엉뚱함을 가장한 실험정신이 배두나를 그녀답게 만들고 대중들이 그녀를 지지했던 이유일 것입니다. 그녀는 이러한 캐릭터와 지지를 바탕으로 그녀만의 실험을 계속해왔습니다.

도쿄, 런던,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몸을 숨긴 채 카메라를 들고 구경꾼의 시선으로 무작정 돌아다니는가 하면, 한류스타도 아니면서 일본영화에 출연하여 일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휩쓸기도 합니다. 역시 그녀는 엉뚱함이라는 날개를 달고 현실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있어야만 아름다워 보이는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배두나의 '공부의 신' 출연은 의외의 선택이자 낯선 방향입니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배두나는 '스토리'보다는 '시'의 영역에 있는 배우이기 때문입니다. 압축되고 이미지화 되어야하고 무엇인가를 온몸으로 상징해야 어울립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그녀의 압축된 그 무엇을 해체시켜버립니다. 둥둥 떠다녀야 할 것 같은 그녀의 엉뚱한 매력을 '공부의 신'에서는 찾아볼려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착하고 마음씨 좋고 학생들을 위하지만 그것은 학생들에게 유리할 뿐, 정작 배두나 본인에게 유리하지는 않아 보입니다.

영화 \'괴물\'에 출연한 배두나. 논리다 이념보다 빠른 본능적이고 육체적 반응으로 그녀는 조카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 엉뚱한 곳에 안착한 그녀의 실험적 이미지

결국 그녀의 엉뚱하고 낯선 이미지는 세상사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류에서 한 발짝 뒤떨어져 있는 '맘씨 좋은 선생님'으로 그려지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안방 시청자들에게 다가온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Y세대 대표주자의 귀환치고는 조금은 실망스럽기도 합니다.

어느덧 30대 초반의 여배우가 된 배두나의 길 찾기가 어디로 향할지 자못 궁금합니다. 더 이상 엉뚱함으로 실수를 포장할 수 없는 30대의 압박감에 다소 안정적인 학교 선생님으로 돌아갈지, 엉뚱함의 내공을 진화시켜 '공기인형'처럼 둥둥 떠다닐지….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배우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30대에 길을 잃은 늙어버린 한 마리 양으로써 말입니다. 그게 Y세대의 지지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가 아닐까요?

조희제 / 문화평론가 siraga@gmail.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