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너클볼러’인 팀 웨이크필드. 마흔다섯살인 그는 여전히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선발로 활약하며 이닝이터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손가락 힘으로 밀어 던져 공 회전 최소화
던지는 투수도 예측 힘든 변화 ‘제구 애로’
팔꿈치·어깨 무리 덜줘 현역 연장에 도움
한국야구 최초 구사 박철순? 사실은 팜볼!
국내 코치들 단점만 주목 너클볼러 안키워
너클볼의 모든 것던지는 투수도 예측 힘든 변화 ‘제구 애로’
팔꿈치·어깨 무리 덜줘 현역 연장에 도움
한국야구 최초 구사 박철순? 사실은 팜볼!
국내 코치들 단점만 주목 너클볼러 안키워
“너클볼이 오면 타자는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걸 알아낸 사람이 그 내용으로 책을 쓴다면 불티나게 팔려나갈 것이다. 나 역시 너클볼을 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나에게 묻지 말기 바란다.” 최후의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가 그의 저서 ‘타격의 과학’에서 남긴 말이다. 야구역사상 최고의 타격이론가도 분석을 포기한 마구. 너클볼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을 정리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최초로 너클볼을 던진 투수는?
메이저리그에서는 ‘너클스’라는 애칭으로 불린 에디 시코티(1884∼1969년)가 너클볼의 창시자라는 설이 유력하다. 한국에선 다수의 야구관계자들이 “프로 초창기 박철순이 너클볼을 던졌다”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박철순은 “미국에서 배워온 팜볼이었다. 지금 개념으로 하면 체인지업”이라고 밝혔다. 원년부터 포수 마스크를 쓴 이만수 SK 2군 감독은 “원년에 실전에서 너클볼을 구사한 투수는 없었다”고 단언한 뒤 “이후 MBC 오영일이 처음으로 던졌다”고 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해태의 안방을 지킨 장채근 전 히어로즈 코치는 “이상윤(전 해태 투수) 선배가 너클볼을 구사했다. 그 분이 최초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회상했다.
○너클볼을 접할 때의 느낌은?
너클볼의 원리에 대해 ‘야구의 물리학’에서는 “공의 회전을 극도로 줄이면, 솔기의 비대칭으로 인해 힘에 큰 불균형이 발생한다. 솔기가 있는 쪽에서는 공기저항 때문에 난류(공기의 불규칙한 소용돌이)가 생긴다”고 설명한다. 축구의 무회전 프리킥이나 배구의 플로트 서브도 같은 원리다. 실제로 너클볼을 경험한 관계자들의 얘기는 SF 소설을 방불케 한다.
김동수 넥센 코치는 “현대 시절 용병 미키 캘러웨이의 너클볼을 잡지 못해 공이 발등에 찍힌 적도 있다”고 했다. 미국 시절 ‘너클볼러’ 찰리 헤거(LA 다저스)를 상대해봤다는 코리 알드리지(넥센)는 “파리채(배트)로 파리(공)를 잡는 것과 같다”고 황당했던 당시의 느낌을 전했다.
○한국 최고의 너클볼은?
한국에선 장정석 넥센 1군 매니저의 너클볼이 명품으로 꼽힌다. 외야수였던 장 매니저는 KIA 소속이던 2003년 너클볼러로 변신을 시도했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장채근 KIA 코치는 “내로라하는 투수들의 공을 다 받아봤지만 공의 변화만 놓고 보면 장정석의 너클볼이 최고”라고 단언할 정도로 위력이 대단했다. 좌우로 흔들거리다 떨어지거나, 위아래로 떨리는 경우도 있었다. 공 주변의 공기소용돌이가 말 그대로 ‘불규칙하게’ 생기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이것이 너클볼 그립! 잠실 | 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 트위터
○너클볼을 잘 던지기 위해 필요한 것?
너클볼의 그립은 크게 두 가지다. 손톱으로 공을 찍거나, 손가락의 첫 번째 마디를 구부려 공을 잡는 방법이 있다. 이후 공을 손목으로 채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 힘으로 ‘밀어서’ 던진다. 너클볼의 성패는 회전을 최소화하는 것에 달려 있다.
정상급 너클볼러들의 회전은 포수 미트까지 약 1회 정도로 알려져 있다. 공에 걸리는 회전을 최소화하려면 두 가지 그립 중, 손톱으로 공을 찍어서 잡는 편이 유리하다. 하지만 공을 밀어내는 힘이 부칠 수 있고, 손톱이 자주 깨질 염려도 있다. 반면 손가락의 마디로 공을 잡으면 공을 밀어내는 힘은 더 셀 수 있지만 공에 회전이 걸릴 가능성은 커진다.
어느 경우든 너클볼을 던지려면 손가락 힘이 중요하다. 그래서 장 매니저는 중학교 시절부터 소프트볼을 밀어내며 손가락 힘을 키웠다.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에서 조상구가 너클볼을 던지기 위해 손가락 마디를 자른 것이 비현실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장 매니저는 “잘린 손가락으로 과연 공을 밀어낼 수 있는 힘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너클볼은 안치면 볼넷인가?
너클볼은 던지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래서 항상 제구가 문제다. 유명 너크볼러들은 전담포수가 있고, 전담포수는 특별히 제작된 미트를 낀다. 그래도 폭투와 패스트볼이 잦고, 볼넷 또한 많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전문가 송재우 해설위원은 “수준급의 너클볼러와 제구력이 좋지 않은 정통파 투수를 비교할 때, 너클볼러의 제구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실제로 메이저리그 통산 318승(16위)을 거둔 사상 최고의 너클볼러 필 니크로(5404이닝)는 놀란 라이언(5386이닝)보다 더 많은 이닝을 소화했지만, 볼넷은 1809개로 라이언(2795개)보다 월등히 적었다.
폭투(라이언 277개·니크로 226개)를 비교해도 마찬가지. 니크로의 9이닝당 볼넷 허용은 약 3.01개인데, 이는 ‘체인지업의 마술사’ 톰 글래빈(3.06)보다 낮은 수치다. 송 위원은 “스트라이크를 넣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존을 더 크게 본다”는 웨이크필드의 말을 인용해 “수준급 너클볼러들은 의식적으로 스트라이크를 넣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너클볼러는 정말 지치지 않나?
과학자들은 투구가 인체의 구조상 부자연스러운 행위라고 말한다. 팔꿈치 등 굽히는데 익숙한 관절을 뻗는데 써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너클볼은 팔꿈치와 어깨에 무리를 덜 준다. 실제로 니크로는 1986년, 47세에도 200이닝 이상(210.1이닝)을 투구하며 10승 이상(11승11패)을 올렸다.
송진우(45) 한화 투수코치와 동갑내기인 팀 웨이크필드는 현재도 보스턴의 선발 로테이션을 꾸준히 소화하고 있다. 너클볼러들은 ‘이닝이터’와 ‘노익장’의 대명사들이다. 하지만 너클볼러도 분명히 힘이 소진되며 “하루 수백 개도 무리 없다”는 말은 과장된 것이다.
장 매니저는 “너클볼은 투구수가 많아지면 손가락 힘이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공을 정확히 밀어낼 수 없게 돼 공에 회전이 걸리고, 밋밋한 공이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너클볼러의 직구는 점점 더 느려진다?
웨이크필드의 직구는 시속 120km대에 불과하다. 하지만 미국을 대표하는 타자들도 그 직구에 스탠딩삼진을 당한다. 보통 너클볼의 구속이 80∼100km이기 때문에 직구는 스피드건에 찍히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느껴진다. 팔꿈치 인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돼 너클볼러로 전향한 R A 디키(뉴욕 메츠)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너클볼러들은 원래부터 강속구투수가 아니었다.
게다가 너클볼에 공력을 들이다 보면 직구 구속은 더 떨어지게 된다. 두 구종은 던지는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송신영(넥센)도 “너클볼을 훈련 때는 장난삼아 던져보기도 했는데, 직구 구속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 던지지 않는다”고 했다.
○한국에는 왜 너클볼러가 없는가?
장 매니저는 투구의 70∼80% 이상을 너클볼로 던진 대한민국 최초의 너클볼러 도전자다. 물론 그의 너클볼이 더 확실했다면 성공할 수 있었겠지만 팀은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지도자들이 ‘생소한 구종’의 장점을 보기보다는, 느린 직구 스피드와 잦은 폭투·도루허용 등 약점들에 주목한 탓도 있었다.
하지만 니크로는 1977년 내셔널리그 탈삼진 1위(262개)에 오를 정도의 압도적 구위로 출루 자체를 봉쇄했고, 메이저리그 사상 손꼽히는 견제능력으로 도루허용을 최소화했다. 장 매니저는 “너클볼로 아예 주자를 안 내보내면 된다”는 말로, 한국에서도 너클볼러가 탄생하길 기대했다.
전영희 기자 (트위터@setupman1) setupm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