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거인정지현,‘평범’메친‘비범’…“레슬링은내운명”

입력 2008-04-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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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조는 체력을, 유도는 기술을, 패배는 심리전을 가르쳤다. 1년만에 최강, 그리고 아테네 金. “운동만큼은 무식하게 했죠” 8월 베이징, 더 강해진 나를 시험한다 ○체조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게 마냥 좋았다. 공부는 싫었지만 철봉이라면 대장이었다. “그 놈 참 잘하네.” 동네 어른들 사이에서도 입소문이 났다. ‘그래 진짜로 운동 한 번 시켜보자.’ 어머니는 대한체육회까지 전화를 걸었다. “우리집이 안양인데요….” 결국 초등학교 5학년 때 수원에 있는 초등학교의 체조부를 소개받았다. “체조 천재 소리까지 들었어요.” 자기 자랑에 익숙하지 않은 정지현(25·삼성생명)의 기억인 것을 보면 확실히 재능이 있었나보다. 하지만 코치의 지나친 욕심이 문제였다. 엄한 훈련은 1년 만에 어린 초등학생의 흥미를 떨어뜨렸다. “엄마, 나 못하겠어요.” 코치가 애원했지만 정지현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다. ○태권도 & 유도 다음에 어머니가 찾아간 곳은 태권도장이었다. “그냥 배우려고 온 게 아니라 선수를 한 번 시켜보고 싶습니다.” 사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머니, 신체조건이 안 좋습니다.” 이번에는 유도부를 찾아갔다. 그곳에서도 소질 있다는 소리는 들었다. 하지만 작은 체격이 문제였다. 가장 가벼운 체급이 48kg. 하지만 정지현의 체중은 중학교 3학년까지도 40kg을 넘지 않았다. 기술은 있어도 힘이 부족하니 질 수밖에 없었다. “그 때는 사실 이겨본 기억이 거의 없어요. 매일 지면서도 그 힘든 훈련을 견뎌 낸 게 신기하죠.” 속상한 어머니는 매일 밤 합숙소로 음식을 날랐다. “먹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였어요. 그 때 그렇게 많이 먹어서 그런지 지금도 위가 안 좋다니까요.” 라면이며, 빵, 깐포도 등 칼로리가 높다는 음식은 다 먹어봤지만 체중은 늘지 않았다. ○레슬링 중학교 3학년, 그 날도 어제와 같은 오늘. 힘에서 밀려 또 졌다. 안양 범계중학교 유도부 문성연 감독이 조용히 정지현을 불렀다. “(정)지현아, 너 레슬링 한번 해볼래?” 순진한 정지현은 감독 선생님이 시키면 다 해야 되는 줄 알았단다. 3일이 지난 후 “하겠다.”고 답을 줬다. 문 감독은 분당 서현고 레슬링부의 박동우 감독을 소개시켜줬다. 첫 테스트. “야, 둘이 한 번 붙어봐.” 박 감독은 동년배의 레슬링 선수와 스파링을 시켰다. “야, 레슬링은 옷 당기면 안돼.” 레슬링과의 첫 만남이었다. 딱 3개월을 했다. 신기하게도 잘 이겼다. 첫 전국대회 성적이 3위. 유도를 할 때는 느껴본 적이 없던 쾌감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되면서 마지막 변신을 했다. 자유형에서 그레코로만형으로 바꿨다. 레슬링 입문 1년 만에 또래 중에는 상대가 없었다. 그저 그런 유도선수에서 1년 만에 ‘제2의 심권호’가 됐다. ○유산(遺産) 체조는 정지현에게 기초체력과 유연성이라는 선물을 남겼다. 로베르토 몬손(쿠바)과의 2004 아테네 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0kg 결승. 1라운드 2분만에 2점을 뽑은 정지현은 4분경 패시브를 받았다. 몬손은 결승전까지 올라오는 동안 이미 공격할 체력조차 바닥나 있었다. 하지만 정지현은 달랐다. 두 팔을 벌리고 사력을 다해 매트 바깥쪽으로 기었다. 연장전, 동전던지기를 통해 유리한 자세를 먼저 잡은 것은 몬손이었다. 하지만 몬손이 기술을 걸어 매트에 떨어지는 순간 정지현은 되치기를 성공시켰다. 3-0. 그것으로 경기는 끝이었다. 대표팀 그레코로만형 박명석 감독은 “(정)지현이의 체력과 유연성은 최고”라면서 “뒷심도 좋고 되치기에도 강하다”라고 했다. 상대가 3점짜리 기술을 걸어도 떨어지는 순간 1점짜리로 바뀐다. 공중에서 몸을 잘 비틀기 때문. 유도는 중심이동과 기술의 기초를 다지게 했다. 방대두 국군체육부대 레슬링 감독에 따르면 정지현은 허리태클과 업어 넘기기 등 탄력을 이용해 튕기는 기술에 강하다. 패배의 경험 속에서 상대의 심리를 읽는 기술을 가진 것 역시 유도가 준 자산이다. 마치 자기 인생의 모든 경험이 레슬링을 위해 존재하는 듯 했다. 정지현은 “체조든, 유도든, 레슬링이든 운동 만큼은 단순하고 무식하게 했다”고 말했다. 다른 모든 사람들도 다 이렇게 살아가는 줄 알았단다. 정지현은 2월 한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신기하게도 논문을 쓸 때면 또 내 삶의 모든 경험들이 논문을 위한 것 같았다”고 했다.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뒤 자신을 쌓아갈 줄 아는 능력, 베이징에서 4년간 더 강해진 정지현을 만날 것을 예감했다. ●정지현 프로필● 생년월일 : 1983년 3월 26일 신장 : 165cm 체중 : 68kg 학력 : 석수초등학교, 불곡중학교, 서현고등학교 한국체육대학교, 한국체육대학교 대학원 ●주요대회입상 2002년 : 폴란드오픈국제대회 그레코로만형 55kg 1위 2004년 : 아테네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0kg 1위 2004년 : 카자흐스탄아시아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60kg 1위 2004년 : 헝가리그랑프리국제대 그레코로만형 60kg 1위 2005년 : 유니버시아드대회 그레코로만형 66kg 2위 2006년 : 카자흐스탄아시아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66kg 1위 2007년 : 키르기스탄아시아선수권대회 그레코로만형 66kg 2위 태릉=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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