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야구인생’조진호,‘1군호출’MLB승격만큼기뻤다

입력 2008-05-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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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승리를 거두기까지 무려 1717일. 그가 마운드에 서기까지, 그리고 승리에 대한 갈증을 풀기까지의 이야기는 ‘천일야화(千一夜話)’로도 그려내기 힘들 만큼 파란만장하다. 삼성 조진호(33). 5월 4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화전에 선발등판해 6이닝 4안타 1삼진 무실점을 기록하며 승리투수가 됐다. SK 시절이던 2003년 8월 22일 문학 롯데전에서 승리투수가 된 뒤 처음 맛보는 감격의 승리였다. 천일야화가 만들어지기까지는 3년의 세월이 소요됐지만 그가 승리를 거두기까지는 장장 4년 8개월 12일이 필요했다.한국인 메이저리거 2호, 부상과 국내 U턴, 병역비리 수감생활, 수술, 테스트 입단, 그리고 승리투수…. 어버이날인 8일 삼성이 묵는 광주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주홍글씨가 된 병역비리 그는 1998년 보스턴 레드삭스에 입단하자마자 첫해 루키, 싱글A, 더블A를 거치며 초고속으로 빅리그에 승격했다. 박찬호에 이어 한국인 빅리거 2호. 그리고 99년에는 2승을 거두며 역시 한국인 2호 빅리그 승리투수가 됐다. 빅리그 통산 2승6패의 성적을 안고 이후 마이너리그를 맴돌다 2002년 중반 SK에 입단하며 국내프로야구에 뛰어들었다. 그는 2003년 4승5패의 평범한 성적을 남긴 뒤 2004년에는 2군에 머물렀다. 그리고 9월 야구선수들의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돼 8개월 동안 수감생활을 했다. ‘대한민국은 전과자가 살기 힘든 나라’라는 말이 있다. 차라리 야구를 그만뒀더라면 일반인들에게 ‘병역비리자 조진호’는 잊혀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26개월간 공익근무를 하면서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까지 받고 재활훈련을 했다. 다시 공을 던지겠다는 의지였다. 마운드에 다시 서는 날 자신의 이마에 새겨진 그 주홍글씨도 팬들에게 다시 각인될지 모르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죄를 지었으니 팬들이 저에게 손가락질을 해도 할말은 없죠. 그러나 야구를 그만두면 저는 팬들에게 병역비리자의 모습으로만 남는다고 생각했어요. 한때는 실수를 했지만 마지막 모습은 야구선수로 남고 싶었어요.” ○희망을 품게 한 전화 한통 그는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불러줄 팀이 있을까 불안했다. 공익근무가 1년쯤 남았을 때 삼성 김태한 코치에게서 전화 한통이 걸려왔다. 김 코치는 “몸은 어떠냐. 운동 열심히 하고 있어라. 나중에 우리 팀에 테스트 한번 받아봐라”며 용기를 북돋웠다. “김태한 코치님은 2003년 SK에서 같이 선수생활을 했는데 괜히 코치님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부담도 있었어요. 그러나 희망이 생기니 힘이 나더라고요. 그리고 삼성에 테스트를 받으러 갔죠. 몇 년을 쉬다보니 구속이 130km도 안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120km쯤 됐을까? 선수도 아니었죠. 경산 숙소에서 생활했는데 삼성에서 한달 동안 계약하자는 얘기가 없더라고요. 또 불안했죠. 그때쯤 조계현 코치께서 ‘편안하게 하라’고 말씀하셔서 내 실력이 모자라도 계약을 할 모양이다 생각하게 됐죠.” 연봉 5000만원이었다. 몸값을 신경쓸 처지가 아니었다. 다시 야구할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한화전 선발통보 잠 못 이룬 밤 인천의 전셋집도 정리하고 삼성의 경산숙소에 들어갔다. 구단에서는 속소가 한정돼 있는데 그가 숙소생활을 하겠다고 하니 난감해하는 눈치였다. 어린 선수 한명이 방을 쓸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나가서 혼자 살면 뻔하잖아요. 밥도 챙겨 먹을 수 없고 빨래도 그렇고. 경산에는 웨이트트레이닝 시설도 있으니까 1년은 일단 숙소생활을 하게 해달라고 고집을 부렸죠.” 전지훈련과 시범경기에서 그는 최선을 다했지만 개막을 앞두고 2군행을 통보받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망도 컸다. “2군경기 개막전 선발투수로 나갔는데 나가자마자 3연패했어요. 박살이 났죠. 이래서 어떻게 1군 가나 싶어 너무 괴롭더라고요. 밤에 잠도 못자고 그랬죠. ‘올해만 야구하고 그만 둘 게 아니다. 과거 좋았던 모습을 찾자’고 생각했어요.” 4월 27일 KIA전에서 6이닝 3실점을 했지만 최고구속 144km가 찍혔다. 삼성 선동열 감독이 보고를 받은 뒤 4월 29일 1군 엔트리에 올렸다. “2군 매니저한테 1군 승격을 통보받았을 때 PC방에 있었어요. 소식을 듣자마자 빨리 가서 몸관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마이너 있다 메이저리그행 통보를 받았을 때와 기분이 비슷했어요. 그리고 4일 한화전 선발등판을 통보받고 전날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1승하고 나니까 또다른 욕심 그가 삼성에 입단했을 때 모두들 ‘보험용’이라고 했다. 그는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현실을 받아들였다. 첫승을 하자 선동열 감독은 “1승으로 몸값은 다했다”며 흡족해했다. 삼성은 전병호가 2군에 내려가면서 선발 로테이션에 구멍이 생겼고, 죽음의 9연전에 땜질용 선발로 올린 그가 승리까지 거뒀으니 그만큼 값진 승리도 없었다. 그리고 10일 최강 SK전에 선발등판해 비록 승패없이 물러났지만 4.1이닝 3실점을 기록하며 팀 승리의 주춧돌을 놓자 선 감독은 “조진호를 선발 로테이션에 넣겠다”고 말했다. 조진호는 그러나 “아직 이 자리가 제 자리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다음 등판에서 망가지면 저는 언제든지 2군에 갈 수 있는 선수잖아요. (전)병호 형이 1군에 올라올 때면 제 이름이 거론될 수 있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겠지만 그때까지 최선을 다해 던질 것이고 결과는 받아들여야죠.” 그러나 마음속에 독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저도 살아남아야죠. 보험용으로 유니폼을 입을 선수는 없잖아요. 감옥에 있을 때는 정말 1군 마운드에서 단 1게임만이라도 던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 다음에 야구를 그만둬도 여한이 없겠다 싶었는데 1승하고 나니까 또 욕심이 생기네요. 첫승 하는 날 만원관중이었잖아요. 홈구장에서 환호성을 들을 때 제가 주인이 된 느낌… 다시 그 맛을 느끼고 싶어요.” 98년 한국인 빅리거 2호로 환호받던 그는 정확히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풍운아’가 돼버렸다. 그 사이 공의 힘은 떨어졌다. 인생은 커브처럼 굴곡졌고, 슬라이더처럼 미끄러졌다. 그러나 도전의식과 의지 만큼은 올곧은 직구다. 역경을 겪어봤기에 쓰러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조진호다. 이재국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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