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녕기자,‘온에어’김하늘매니저되다]밥·운전·연기조언까지…“우와!매니저는슈퍼맨”

입력 2008-05-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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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불안하긴 하지만 한 번 믿어보죠.”신뢰. 매니저와 배우의 관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렇다. 김하늘은 불안한 눈길로 기자를 쳐다보며 “하실 수 있겠어요?”라고 반문했다. “기자도 나름 험난한 직업”이라고 응수했더니 그녀는 “봐주는 일 없다”고 으름장을 놓았다.기자는 14일 인기스타 김하늘의 일일 매니저로 나섰다. 그녀가 출연하는 드라마 SBS ‘온에어’(극본 김은숙·연출 신우철)의 역할로 치면 ‘일일 장기준’이 된 것이다. 장기준은 이 드라마에서 이범수가 연기했던 매니저의 이름이다. “장기준은 이렇게 안 해요, 매니저 오빠.” 곁에서 넋놓고 우두커니 서있던 기자에게 김하늘은 불쑥 “배고프다”며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온에어’에서 종종 보던 톱스타 오승아의 바로 그 표정이다. 촬영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밴 승합차 안에서 끼니를 때워야 하는 상황이라 부랴부랴 도시락을 사러 나섰다. 뛰어가는 기자의 뒤통수에 대고 김하늘이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빵은 여태껏 죽도록 먹었거든요?” #1. 매니저는 스타 손과 발 “매니저 오빠, 대본 밑줄치고 공부하세요”…“엥??” 밴 승합차의 문을 열자 좌석 위에 검은 가죽 가방이 놓여 있다. 김하늘은 “준비 가방”이라며 “무겁겠지만 메라”고 했다. ‘준비 가방?’ 가방 속의 내용물은 이렇다. ‘온에어’의 20회와 21회 대본 2부, 이날 촬영 일정이 적힌 스케줄표, 그녀가 촬영 중 마실 물 2통, 껌 한 통, 200여 장에 달하는 사인지 2종, 사인 전용 매직 2개, 색깔 별 볼펜 3개, 그리고 바나나 우유였다. 김하늘은 내용물을 일일이 꺼내 설명을 했다. “스케줄표에 따라 대본을 먼저 읽고 저랑 얘기를 해야 해요. 매니저 오빠 생각을 말해 달란 말이죠. 볼펜은 밑줄 그으면서 공부하라고 있는 거죠. 그리고 저는 전용 사인지에 사인해 팬에게 드려요. 아무 데나 해드리는 건 성의없어 보여 싫어요. 바나나 우유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음료구요.” 승합차 보조석에 자리를 잡으니 그녀가 불쑥 “운전 안 해요?”라고 했다. 1종 면허는 있는데 차가 워낙 큰 데다 밴 운전이 처음이라 ‘혹여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지 않은가’라고 손사레를 쳤다. 김하늘이 정색을 했다. “사고 나면 ‘기자 운전 미숙으로 김하늘 교통사고’라고 나중에 기사 쓰면 되겠네. 오늘은 배우와 매니저로 한 배를 탔으니 내 목숨 한 번 맡겨보죠!” #2. 무엇이든 척척 “인천엔 없어요, 서울서 청바지 좀”…“헉!!” 촬영장인 인천공항까지 무사히 도착은 했다. 운전대를 꽉 잡은 탓인지 양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곤히 잠들었던 김하늘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다 왔어요?”라고 하품을 했다. 드라마는 방영되는 순서와 촬영장면 순서가 꼭 맞지는 않는다. 김하늘은 이날 마지막 장면인 42신부터 찍었다. 42신은 오승아가 할리우드로 오디션을 보러 출국하는 장면. 김하늘은 “신인의 자세로 가서 꼭 성공해 돌아오겠다”는 대사로 ‘겸손해진’(?) 오승아의 면모를 보인다. 코디네이터가 챙겨든 옷은 호피 무늬 원피스. ‘신인의 자세로 돌아간다는 오승아가 저토록 요란한 복장을?’ 그녀에게 이유를 설명하며 ‘의상 교체’를 권유했다. “매니저 오빠 말이 맞는 것 같은데요. 차 안에 청바지 있죠? 청바지에 반팔 셔츠로 합시다.” 불행히도 청바지는 움직이는 옷장이나 다름없는 밴 승합차 안에 없었다. 급기야 서울에서 인천공항까지 청바지와 수수한 반팔 셔츠가 공수됐다. 본격적인 촬영까지 남은 시간은 5분. 옷가방을 길바닥에 펼쳤다. #3. 스타마음까지 척척 “눈물이 안 나와 어떡해요”…“우! 난 울고 싶어라” “눈물이 잘 안나와….” 김하늘이 울상을 지었다. 여태껏 자존심 세우느라 눈물을 보이지 않던 오승아가 마지막회인 21회에선 ‘몰아서’ 울어버린다. 촬영장 주변엔 TV 카메라에 구경 온 팬들의 디지털 카메라까지 가세, 수백대가 진을 쳤다. 슬픈 생각을 해보라고 했더니 김하늘은 피식 웃었다. “매니저 오빠는 슬픈 생각하면 울컥 눈물이 나요?”라고 되물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자와 김하늘은 촬영장 한 켠에 서서 오승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온에어’에서 톱스타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그 여자, 오승아. 극 초반부 성 상납 파문에 최근 몰카 비디오 연루까지 유명세 만큼이나 굴곡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 “동료애를 느끼죠. 실제로는 겪은 바 없는 사건들이지만 같은 배우로서 연민의 감정을 갖고 동정하죠. 오승아는 큰 사건을 겪었지만 의도하지 않은 스캔들에 휘말렸을 때 느꼈던 내 감정의 깊이와 같다고 생각해요. 화려하지만 측은한 여자죠.” 그래서 김하늘의 마지막회 눈물 연기는 오승아를 향한 ‘측은지심’에서 비롯됐다. 눈이 퉁퉁 부었다. 무려 4시간 동안 감독의 사인에 따라 울고 멈추고를 반복했다. 오전 11시에 만나 하루를 넘긴 15일 새벽 3시 김하늘과 작별 인사를 했다. 16시간. 통상 인터뷰 시간이 대개 1시간 정도임을 감안하면 16번의 만남을 단 하루에 해치운(?) 셈이다. 마지막 촬영 후 김하늘은 한동안 밴에 혼자 앉아있었다. 침묵은 인천공항에서 톨게이트를 벗어나는 20여분간 이어졌다. 김하늘이 입을 열었다. “매니저 오빠, 다음엔 무슨 역할 해야 하죠? 막연하게라도 생각이 안나요. 당분간 오승아와 헤어지기 힘들 것 같아. 그간 내가 작품에서 만난 수많은 여자 가운데 그녀는 ‘굿’도 아닌 ‘베스트’였거든요.” 허민녕 기자 just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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