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꾸는사람들]레지나“세상이연극판,네맘껏놀아봐”

입력 2008-05-15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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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신경림 갈대 시 마지막 구절이다. 무대 위에서 울기 위해 속으로 수없이 울어야 하는 배우. 갈대 같은 두 여인이 마주앉았다. 연극이 좋아서, 배우가 좋아서, 학교를 졸업한 후에 본격적으로 다시 연극을 공부한 여인들. 연극 ‘블랙버드’ 주인공 레지나와 서울예전 3학년 김호정이다. 레지나는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다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김호정은 문학을 공부한 뒤 서울예전 연극과에서 연기를 전공 중이다. 둘은 배우와 배우지망생이기 이전에 학교에서 만난 스승과 제자다. 호정 : 앗! 선생님? 선생님이 ‘블랙버드’에 나오시는 줄 몰라봤어요. 레지나라는 세례명으로 활동하셔서… 수업 때 남학생들 ‘아∼사랑스럽다!’ 바라보며 좋아하던 이미지와 달라서 놀랐어요. 레지나 : 원래 ‘보이시’한 게 내 특징인데… 상처 있는 여자 역할이 마음에 들어. 추상미 씨는 더욱 여성적이고 나는 좀 다른 측면으로 접근했어. 3월이 다 돼서 캐스팅이 된 바람에 지금 정신이 없어. 연습하느라고… 호정 : 선생님은 전혀 ‘보이시’하게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했는데… 연극을 보니 강한 캐릭터로 보여요. 선생님 연기를 보면서 저는 계속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느라 큰 흐름을 따라가기보단 계속 멈추게 됐어요. 레지나 : 항상 강한 색채의 캐릭터를 연기해왔어. 학생들만 박희은으로 기억하지 친구들도 관객들도 레지나로 알아. 사람들이 기억을 잘 못 하고. 몸이 많이 아파서 이름을 바꿨어. 호정 : 저도 제가 존경하는 배우랑 이름이 똑같아서 가명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해요. 요새는 졸업을 앞두고 너무 막막해서 휴학을 했어요. 그냥 졸업하기에는 현실이 녹록치 않아요. 레지나 : 졸업하고 일 년은 되게 힘들어. 작품을 안 하고 쉬는 날이 많아지면 지치기도 하고… 그런데 연극을 못 하고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돼. 영화나 무용, 아니면 연애라도 해야지 가만히 있으면 안 돼. 한동안 난 탱고에 심취했어. 호정 : 탱고를 하려고 해도 탱고 수업비가 필요하잖아요? 배우는 투 잡(Two Job)이 기본인 거죠? 레지나 : 난 연극원 졸업하고 3년 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힘들었어. 사람들이 ‘교수하면 연기 못 한다. 연기만 해라’ 그랬어. 공감이 가. 시간이 부족해. 내가 이 시간을 연기에다 투자하면 어떨까. 그럼 너무 배가 고프지. 계속 고민하게 돼. 수업하면서 피치 못하게 부모에게 효도를 하게 됐거든. (웃음) 나같이 수업을 하거나 과외나 학원 하는 사람이 많아. 아니면 서빙을 하거나, 아예 가게를 운영한다거나 하는 분도 계시고. 대학로 술집 중에는 연극배우들이 하는 가게가 많거든. 호정 : 접시 닦기 아르바이트 말고 계속 관련된 일을 하고 싶은데 … 레지나 : 어쨌든 경험이 많은 게 좋아. 우리는 항상 같은 사람을 만나잖아. 내가 만나는 사람은 배우밖에 없어. 접시를 닦든 동대문에서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든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해. 내 경우에는 늦게 시작하고 어릴 때 많이 놀아서 (웃음) 다행이야. 그게 아무래도 마음을 내려놓는 데에 도움이 돼. 그래서 어린 나이부터 시작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가서 연애도 더 많이 하고 놀라고 얘기해. 삶을 알아야 되니까. 호정 : 학교에서 작업할 때는 선후배 관계가 중요하잖아요. 현장도 그래요? 레지나 : 연기라는 게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잖아. 마음이 닫히면 끝이야. 우리가 가식으로 연기하는 게 아니라 내 마음도 열려야 하고 상대방 마음도 열려야 하니깐. 연출자마다 스타일이 다르거든. 나도 고집이 센 편이라서 마음이 한 번 닫히면 힘들어. 할말은 해야 하는데 방법이 중요하지. 어쨌든 배우는 불리해. 우선은 먼저 열어야 하니깐. 배우를 하다보면 사람이 되는 거 같아. 호정 : 선생님, 요새 저는 ‘펑펑 운다’의 지문을 소화하지 못해요. 처음에는 신선하니까 울 수 있는데 한 달이 지나면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누구는 가운데 손가락만 건드려도 눈물이 나온다는 사람이 있는데 항상 그 장면만 되면 스트레스 받아서 ‘나 오늘 또 못 울 텐데…’ 그런 걱정이 또 못 울게 만들어요. 레지나 : 테크닉은 그냥 테크닉일 뿐이야. 어떤 얘기만 하면 울게 되는 게 있잖아? 그 인물은 그 순간엔 호흡이 생겨야 해. 리허설 과정이 그걸 찾는 과정이거든. ‘이 때는 복받쳐서 울고,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울고…’ 이게 아니라 항상 울 수 있도록 연습 때 과정을 탄탄히 밟아 가면 돼. 호흡이 차오르면 울 수 있어. 호흡이 올라가고 올라가서 울 수 있도록 분명히 텍스트가 만들어져있어. 호흡을 놓치지 않게 앞의 과정에서 좀 더 치밀하게 찾아봐. ‘참고 참았더니 여기서 폭발하는 거다’ 하는 거지. 그런 정서적인 자극은 이미 인물 초반에서부터 있어. 여기서 못 울었으면 앞에서 네가 뭘 빠트리고 잘못한 거야. 물론 그래도 안 되는 날은 있지. 호정 : 두려워요. 레지나 : 아니야. 기회는 네가 알 수 없는 순간에 나타나니깐, 꾸준히 준비하고 있으면 돼. 호정이는 좋은 배우잖아. 한 학기 보면서 여러 가지를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했어. 인상이 다부져보였으니깐. 호정이 넌 수업을 꼼꼼하게 열심히 잘 듣고 발표도 잘 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 배우 레지나는… 2000년 중앙대학교 생명과학과 졸업 2001년 유씨어터 ‘에쿠우스…어둠 속에 잠들다’ 출연 2005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전문사 졸업, 국립극단 ‘베니스의 상인’ 출연 2004년∼2005년 독립영화 '고백', ‘이만큼만 가져갈게’, ‘멜랑꼴리아’, ‘ 세 번의 전화’, 장편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연극원 ‘멕베스’, ‘과학하는 마음’, ‘안티고네’ 등 다수 출연 2006년∼2008년 연극 ‘시련’, ‘마리화나’, ‘블랙버드’ 등 출연 ○ 배우 지망생 김호정은… 김호정은 명랑소녀다. 까르르 웃는 모습이나 툭툭 던지는 말투가 함께 있으면 비타민이 된다. 남에게 웃음은 주지만 안으로는 끊임없이 침잠하는 캐릭터, 천상 배우다. 대학 졸업반, 토익과 학점 관리에 다람쥐 쳇바퀴 도는 생활을 하다가 심한 우울증이 찾아왔다. 장학금도 타고 취업 박람회도 쫓아다니고 바쁜 일정이었지만 우울증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살면서 연기 한 번 안 해본 사람은 없잖아요? 사는 게 한 편의 연극인데…” 학창 시절 줄곧 장진을 쫓아다녔던 소녀는 결국 진로를 연극으로 정한 뒤 행복해졌다. 부모 몰래 서울 예전 연극과에 입학하고 꾸중도 호되게 들었지만 행복하다. 진로 고민이 힘들어도, 남과 똑같은 생활에서 느꼈던 황량한 마음은 이제 사라졌다.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기쁨에 후회한 적도 없다. 졸업을 앞둔 지금 눈코 뜰 새 없이 개인생활을 모두 반납하고 공연 준비에 매진하고 있다. 6월 19일(목)에서 21일(토), 남산드라마센터에서 졸업 공연을 준비 중이다. 김호정은 서른의 애인과 연애하는 마흔 셋의 뚱뚱하고 착한 ‘퍼트 부인’으로 등장한다. 연하의 연인은 폐결핵을 앓고 있는 예민한 남자로 둘은 서로 정신적인 교감을 나누는 특별한 사랑에 빠진다. ○ 배우가 되려면? 배우 지망생들은 대개 ‘오티알’(http://www.otr.co.kr/)을 통해 정보를 얻고 오디션을 본다. 배우가 되는 길은 공개오디션을 치르고 극단에 들어가거나, 아는 사람을 통해 소개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직까지 후자의 사례가 많다. 이미 친분과 신뢰감이 있는 배우를 서로 추천해주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공채 오디션을 통해 극단에 들어갈 경우에는 어떤 극단의 무슨 작품이 하고 싶은지 잘 생각해보고 들어가야 한다. 레지나는 졸업 후 ‘유씨어터’에서 일하다가 다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 들어가 3년 동안 10편 남짓의 작업을 했다. 학교를 졸업한 뒤 왠지 자신감이 있었음에도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단편영화도 찍고 ‘미스사이공’ 뮤지컬 오디션도 보고, 여러모로 노력했지만 제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다. 몸도 많이 아프고 연인과 이별한 뒤 서른의 성장통도 겪게 된다. 다시 연기를 할 수 있게 된 건 학교에서 만난 연출가, 극단 친구 등 ‘아는 사람’의 도움이 컸다. 레지나는 학생들에게 “자신을 객관적이고 감각적으로 보는 법을 배우되 ‘사람’을 익히라”고 말한다. 연출가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신뢰해서 발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평소에 사람을 많이 알아야 작업이 끊이지 않고 연결될 수 있다. 일을 시작하고 2∼3년이 지나면 같은 업계의 사람들도 익히고, 알음알음 현장에 적응할 수 있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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