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로읽는연극]“당신은대접받습니까…아니면취급당합니까”

입력 2008-05-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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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트릿’을 보고 나온 여성이 극장 앞에서 말한다. “저렇게 살면 행복할까? 결국엔 다시 돌아갔잖아. 못 잊은 거야?” 또 다른 여성은 말한다. “집요한 애인보다야 차라리 우유부단한 남자가 좋을 것 같은데…” 여자도 여자 마음은 모른다. 같은 이성이기 이전에 그저 개인의 문제다. 산울림소극장의 해외문제작 시리즈 중 세 번째 작품 ‘트릿(treats)’은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연극이다. 정답도 없고, 정답을 알아가는 지름길도 없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그래도 알고 싶은 게 인간의 호기심! 당연지사다. 트릿은 인간의 관계 맺기를 남녀의 ‘삼각관계’로 집약해 펼쳐 보인다. 작품 배경은 1974년 런던, 여주인공 앤의 아파트다. 앤은 애인 패트릭과 소파에 나란히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급작스럽게 우당탕 옛 애인 데이브가 방문하면서 둘의 평화는 깨진다. 신문 기자인 데이브는 자신이 해외로 출장간 사이 앤이 다른 남자를 만났다며 분개하고 한바탕 소란을 피운다. 데이브는 연적인 패트릭이 부아가 끓도록 살살 긁어대는 말을 던진다. 그럼에도 패트릭은 마치 친한 친구라도 되는 양 데이브에게 예의를 갖춘다. 꿈쩍도 안 한다. 감정 표현에 서툴고, 우유부단한 패트릭은 도리어 저녁 식사에 그를 초대해 앤과 데이브의 사이를 해결하려든다. 앤은 진저리를 칠 만큼 불쾌함을 드러내지만 몇 차례의 논쟁 끝에 결국 전 애인인 데이브에게 돌아간다. ‘나 혼자 살아가야겠다’고 말해 놓고도 외로움을 짐짓 더 큰 포즈로 집어삼키면서 결국 자신의 진술을 뒤집는다. 패트릭과 데이브는 완전히 다른 유형의 사람이다. 신문기자인 데이브는 빈정거리기도 하고, 궤변을 늘어놓는 게 주특기인 고집 센 남자다. 데이브는 타인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알아채지 못 하고, 세상에 다소 무관심하지만 안정을 원하는 낙관주의 남자다. 데이브:같이 지내보니까 어때요? 패트릭:그런 말을 당신에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데이브:내가 물어 본 이유는요, 내 나이에는, 물론 당신은 예전에 내 나이를 겪었으니까, 더 잘 알겠지만… 그래요. 예전의 난 내가 갖지 못했던 여자들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했죠, 지금은, 자주, 내가 가지고 있는 여자에 대해 후회스럽게 생각하고요. 패트릭:난 안 그래요. 데이브:내 말은, 지금은 앤이 최고라고 생각하겠지만, 이제부터 그 생각이 바뀔 거라는 거예요. 앤은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좀 지겨워 질 걸요, 난 같이 있을 때도 항상 혼자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어야 했어요. 왜 그렇게 살면서 자신을 힘들게 만들려고 해요? 지금이 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예요. 뒷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요. 패트릭 : 어떤 대답을 듣길 바래요? 데이브 : 떠나겠다는 말. -‘트릿’ 2장 데이브와 패트릭의 만남 중 선택에 있어 단호하다고 믿는 독립적인 여자 앤과 세 켤레의 신발을 두고도 45분 동안이나 고르는 너무도 신중한 남자 패트릭, 꾸준히 여자를 괴롭히면서 동시에 집요하게 갈구하는 남자 데이브 등. 전혀 다른 성격의 남녀가 등장해 서로를 탐색하고 시험한다. 앤은 두 남자 사이에서 어느 누구도 완전히 떠나지 못한다. “당신은 대접받고 있습니까? 취급당하고 있습니까?” 트릿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남을 대하는 주인공들을 통해 자신의 관계를 점검하게 만든다. 이 작품은 ‘토탈 이클립스’, ‘위험한 관계’, ‘어톤먼트’ 등의 시나리오를 쓴 크리스토퍼 햄튼이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에 영감을 받고 썼다. 남성 작가는 여성이 결국 다소 이기적이고 주관이 강한 남자를 만나는 쪽에 손을 들어줬다. 앤은 부드럽지만 열정이 없어 보이는 패트릭보다 마흔 두 명의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웠다는’ 데이브를 선택한다. 결코 그것이 사랑이라고 말해주진 않는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처음처럼 다시 앤의 아파트 거실이다. 앤은 패트릭이 떠난 자리에서 입가에 웃음을 띤 채, 소파에 나란히 앉은 데이브에게 손을 내민다. 그러나 데이브는 앤을 멀뚱히 쳐다만 보고 손을 잡지 않는다. 세 사람은 서로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완전한 의사소통이 없다. ‘자유’와 ‘정직’을 요구했지만 셋 다 모른다. 솔직함 조차 가면놀이가 된다. 무대 위의 여주인공은 인간관계가 속고 속이는 게임이라도 되는 양 명료하지 않은 무표정의 얼굴을 자주 보인다. 짧은 기간의 교제 끝에 결혼하는 사람에게 “너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 줄 알고 결혼하니?”란 물음을 던진 적이 있다. 들려오는 말은 “그럼 나중에 어떻게 변해갈지 속 시원히 보이는 사람이 있느냐?”고 반문한다. 온전히 솔직하고 예상 가능한 관계란 없다. 줄자로 잴 수도 없다. 주는 것만큼 받는 것도 아니다. 감정이 수치처럼 딱 떨어지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의 매력일 수도 있다. 불확실한 인간의 마음을 다소 불편하면서도 덤덤하게 그린 해외 문제작 ‘트릿’은 산울림소극장에서 6월 8일까지 관객을 찾는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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