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아내의의욕상실어찌하리오

입력 2008-05-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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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현관문을 열어주는 아내 얼굴을 보면 생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심지어 어제는 “여보야, 나 아무래도 우울증 오려나 봐. 밥맛도 없고 빨래도 하기 싫고 만사가 다 귀찮다∼” 이렇게 하소연을 합니다. 올해 서른다섯인 우리 아내. 두 아이의 엄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심히 직장을 다니던 사람이었습니다. 결혼 전에도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했는지, 큰아이 임신하면서 그만 둔 회사에서 다시 출근 할 수 있겠냐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큰아이가 세 살 됐을 때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작은 아이 임신해서 막달 될 때까지 다니다가 다시 그만두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거래처 사장님이 소개해 준 다른 회사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회사 다니는 동안 저희 누나가 아이들을 돌봐주기는 했지만, 제 아내 참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천성이 욕심이 많은 여자라 그런 것 같습니다. 직장 생활하는 중에도 아이들 한 번도 지각시킨 적 없고, 소풍 갈 때면 새벽 같이 일어나 김밥을 준비했습니다. 아토피에 걸린 작은 아이 걱정하며 한 달에 두어 번은 이불 빨래를 했습니다. 밤이 늦더라도 이 주일에 한 번씩 수건도 꼭 꼭 삶아두었습니다. 아침잠이 많았지만 가족들에게 그 흔한 빵 한 쪽 꺼내 놓은 적 없습니다. 항상 아침에 먹을 국과 밥을 미리 해놓고 아침상을 차려주었습니다. 직장 일도 열심히 하면서 한달 마감을 못한 일거리는 서류봉투 가득 싸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쉬는 토요일에 아이들 데리고 나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올 때도 있었습니다. 그 틈틈이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비디오 빌려서 챙겨 보고, 아이들하고 같이 서점에 가서 책을 사오기도 했습니다. 바빠서 그 날의 신문을 회사에서 읽지 못하면 집으로 가지고 와서, 잠자리 들기 전에 읽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다니는 아이에게 필요한 사설이 있으면 가위로 잘라 스크랩을 해 놓습니다. 제가 봐도 어쩜 그렇게 열심히 사는지 늘 바쁜 아내였습니다. 그런데 다니던 회사가 약 보름 전에 갑자기 부도가 났습니다. 아내는 마지막까지 남아서 세금계산서를 다 정리해 주고 이제는 집에서 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특유의 긍정적인 말투로 “와, 나 당분간 밀렸던 잠 푹∼ 잘 수 있겠다. 취직 못 해도 실업급여 나오니까 마음 편하게 비디오도 실컷 보고, 책도 뒹굴 거리면서 보고 놀아야지∼” 했는데, 제게 말하진 않았지만, 아무래도 생각지도 않게 직장을 그만둔 게 충격이었던 모양이었습니다. 나이도 있는데 앞으로 다른 곳에 취업하기도 어려울 것 같고, 당장 생활비도 부족하고 아내 혼자 고민이 많은 모양입니다. 읽는다고 사다 놓은 책도 그대로 있고, 제가 읽으라고 사무실에서 갖다 준 신문도 그대로 있습니다. 오히려 직장 다닐 때는 집에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는데, 이제는 텔레비전 위에 뽀얗게 먼지가 앉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 아내의 얼굴에 ‘나 무료해’ 라고 써 있는 게 더 걱정스럽습니다. 늘 가족을 위해 바쁘게만 살아온 사람이 갑자기 여유 시간이 많아지자 감당할 수가 없는 건지 이러다 정말 아내 말대로 우울증이라도 오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이 됩니다. 지난 연휴기간 동안 저도 바빠서 가족들과 시간을 많이 갖지 못 했습니다. 조만간 좋은 날에 아내와 아이들 데리고 교외로 나갔다 오려고 합니다. 아내도 요즘 계속 집에만 있었으니 밖에 나가자 그러면 좋아하겠지요? 간단히 드라이브도 하고 점심도 먹고, 예전 데이트 할 때처럼 아내 기분을 즐겁게 해주고 싶은데… 혹시 좋은 곳 어디 없을까 고민입니다. 아내에게 봄 햇살 가득한 즐거움을 주고 싶습니다. 서울 마포|윤성호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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