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비하인드스토리]‘살살해줄게’말이씨가…바르셀로나4강서탈락

입력 2008-05-25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대한하키협회 양성진(56·사진) 사무국장은 대한체육회 산하 55개 가맹 경기단체 사무국장들 가운데 최고참이다. 1981년부터 27년간 하키협회의 살림을 이끌며 한국하키의 영광과 좌절을 함께했다. 경기인 출신 사무국장이라 선수·코칭스태프의 신망도 두텁다. 하지만 양 국장에게도 선수단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여자하키는 강력한 금메달후보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결승에서 호주에게 0-2로 분패한 후, 대표팀은 4년간 칼을 갈았다. A매치 101경기에서 127골을 기록한 ‘세계여자하키 역사상 최고의 골게터’ 임계숙은 은퇴도 미뤘다. 장은정과 골키퍼 유제숙 등 다른 멤버들도 화려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대표팀은 홈팀 스페인과 연습경기를 치렀다. 4골 차가 날 만큼 대표팀의 기량은 월등했고, 게다가 당시까지 6연승을 거둬 스페인은 한수 아래였다. 조지 알카버 스페인하키조직위원장은 양 국장에게 “스페인과 만나게 되면 한 번만 봐 달라”고 농담을 던졌다. 양 국장은 ‘스페인쯤이야…’하는 생각에 “살살 뛰어주겠다”며 호기를 부렸다. 올림픽이 시작되자 여자하키는 이변의 연속이었다. 강호 호주와 네덜란드가 예선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셨다. 라이벌들이 떨어지자 양 국장은 쾌재를 불렀다. 대표팀은 4강에서 스페인과 만났다. 하지만 말이 씨가 된 것일까.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선취골까지 허용했다. 양 국장의 속은 타들어갔다. 임계숙이 후반전에 동점골을 터트려 연장전에 돌입했지만 대표팀의 슛은 연이어 골대를 맞혔다. 스페인 골키퍼는 신들린 듯 선방했다. 결국 대표팀은 단 한번의 위기에서 골을 허용하며 1-2로 분패했다. 김이 빠진 대표팀은 3∼4위전에서도 영국에 무릎을 꿇었다. 양 국장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나 때문에 졌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 이후로는 경기를 앞두고 말 한마디도 허투루 하는 법이 없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는 “여자하키는 어떤 팀을 만나도 해볼 만하다”면서 “금메달까지 노릴 수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말이 씨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