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스타]최경환,방황길접고방망이폭발…“난오뚝이히터”

입력 2008-06-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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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조범현 감독은 그를 두고 “야구에 파묻혀 사는 선수”라고 평가한다. 프로선수라면 당연히 들어야할 소리지만 ‘당연’이란 말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사실 잘 해야 1군에서 백업이나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 보험용 선수였다. 그러나 이젠 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됐다.” 최경환. 그는 올해 한국 나이로 서른일곱이다. 서른일곱이면 야구선수에게 ‘환갑이 훌쩍 넘은 고령’이다. 더구나 방출에, 이적에 이리저리 옮겨다닌 저니맨. 그래서 그의 활약은 더 눈부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5월 28일, KIA에서 새로운 야구 인생을 써나가고 있는 최경환을 광주구장에서 만났다. ○ 쓰러졌을 때 일어나는 사람, 그가 승자 최경환은 지난해 시즌이 끝난 뒤 롯데에서 방출 당했다. 2001년 LG에서 버림 받은 뒤 두 번째 받은 ‘사형선고’였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제 선수 생명이 끝났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판단했다. 어디가 아프고 몸이 안 따라줘 버림받은 게 아니었기에 스스로 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좌절하지 않았다. 이기는 사람이 승자가 아니라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승자라는 굳은 신념으로, 기회가 또 올 것이라 믿었다. 짧은 순간, 한국 무대가 아니라면 다시 미국 마이너리그나 멕시칸리그에서 새롭게 도전할 생각도 했다. ○ 삼성, 그리고 KIA 방출소식이 알려진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삼성에서도, KIA에서도 연락이 왔다. 하루 늦게 연락이 온 KIA에서 테스트를 받은 건 ‘감독이 너를 원한다’는 말 때문이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KIA에서 테스트를 받으며 야구에 대한 간절함, 절심함이 또 한번 발동했다. 언제나 어려움에 부딪쳤을 때 오뚝이처럼 그를 일어설 수 있게 한 힘은 야구에 대한 열정이었고 결국 그의 남다른 눈빛은 재기의 발판이 됐다. “야구를 다시 할 수 있다는 것, 그라운드에 다시 설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희망이고 행복인지 또 한번 깨달았다”는 게 그의 말이다. ○ 야구는 내 인생의 전부 글러브를 처음 잡은 게 여섯 살 때였다. 고교 시절 야구선수생활을 한 아버지가 일본 출장길에 어렵게 구해다 준 왼손잡이용 글러브. 여섯 살 생일선물은 그 이후 평생 친구가 됐다. 비록 메이저리그 땅을 밟지는 못했지만 1994년 말 캘리포니아 에인절스(현 LA 에인절스)와 입단 계약에 성공, 미국에 진출한 한국인 야수 1호다. 경희대 졸업반인 94년 말 계약서에 도장을 찍은 그는 5대 독자로 ‘6개월 단기사병’을 마친 뒤 95년 4월 태평양을 건넜다. 지금까지 야구를 하면서 가장 크게 후회하는 점. 대학교 2학년 때 빅리그의 러브콜을 받은 그는 “졸업 후 가겠다”고 2년 뒤를 기약했지만 그 판단은 옳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스물넷이란 나이는 루키리그부터 차근히 자리를 잡아가기엔 너무 부담스러웠고 뒤늦은 도전은 끝내 발목을 잡았다. ○ 연이은 아픔 메이저리거 꿈을 접고 1999년 국내 프로야구로 돌아온 것은 정신적 지주이자 평생의 후원자였던 아버지의 건강 악화가 큰 이유였다. LG에서 맞은 2000년 첫 시즌, 그는 95경기에 출장하며 서서히 국내 야구에 적응해 갔지만 그 해 겨울 아버지가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을 겪는다. 이듬해 이런저런 이유로 1군 무대에서 거의 뛰지 못한 채 그는 결국 첫 번째 방출의 아픔을 맛본다. 그 때 그를 거둬준 게 김인식 당시 두산 감독이었다. 두산서 뛴 첫 시즌 그는 126경기에 출장하며 타율 0.274에 13홈런을 기록하며 최고의 해를 보낸 뒤 ‘허슬 두산’을 상징하는 대표선수로 자리매김한다. ○ 트레이드, 방출, 그리고 새로운 도전 네시즌 동안 두산의 외야수로 빛을 발했던 그는 2006년 5월 트레이드를 통해 롯데로 이적한다. ‘젊은 피’에 밀려 둥지를 옮겨야만 했고 그는 그렇게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롯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서 숱하게 팀을 옮겨다닌 그는 한국에서도 LG, 두산, 롯데를 거쳐 이제 KIA유니폼을 입었다. 길지 않은 시간 적잖은 팀을 옮겨다녔다. 옮겨 다닌것도 아니고 버림받은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더 아쉬움이 크다. KIA에서 그는 현재 확실한 주전 선수가 아니다. 선발 출장보다 대타나 대주자로 그라운드에 서는 날이 많다. “선발로, 주전으로 뛰겠다는 욕심은 없다. 벤치멤버라도 난 행복하다. 항상 준비를 할 수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 또 행복하다. 주전이 아니라도 팀이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됐으면 하는 욕심이다. 때론 히든카드로 대타로 서도 좋다. 소금 같은 존재, 그런 선수가 되고 싶다.” 광주=김도헌 기자 dohon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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