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아의푸드온스크린]무의식의마술,광고를먹는다

입력 2008-06-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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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이 시키는 일은 각성된 의식이 수반된 일보다 때로 강렬하다. 아침에 잠깐 흘려들었던 노래가 하루 종일 입속을 맴돌고, 스쳐 지나가며 본 영상이 눈을 감을 때마다 펼쳐지기도 한다. 하다 못해 칫솔 위에 치약을 짜낼 때는 광고에서 본 만큼 칫솔의 면적을 치약으로 길게 덮으려고 아무 고민 없이 튜브에 힘을 넣는다. 이 양은 실제 필요보다 훨씬 많은 것이라고 치과 의사들은 말한다. 적정량은 그것의 1/3 정도. 그러나 광고에서 리드미컬하게 칫솔 위를 가득 덮는 치약이 머릿 속에 스며들어 본 대로 들은 대로 그냥 하게 된다. 광고에서 적정량보다 훨씬 많은 양을 사용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치약 소비 촉진과 관계있다는 것은 그 순간 상관없는 일이 된다.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광고에서의 정보는 많은 일을 해낸다. 어느 기업을 살리기도 혹은 죽이기도 하는 일에서부터 한 민족의 식습관까지 바꾼다. 일제시대를 끝내고 전쟁까지 치르느라 궁핍해진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온 외국의 원조, 값싼 밀가루 때문에 분식이 대대적으로 홍보되었다. 텔레비전에서는 밀가루를 먹으면 머리가 좋아지고, 키가 커지고, 뽀얀 피부가 된다고 설파했다. 실제로 사람들은 서양인의 체형이 밀가루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라면이 탄생하면서 이 흐름에는 완전히 날개가 달렸고 주식의 절반은 분식으로 생각되는 때를 맞이했다. 분식장려운동이 없었어도 우리는 밀가루를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들이 되었을까? 그런가하면 어느 상황에 생각나는 것들도 많이 만들어냈다. 반드시 그 상황에 그 음식이 잘 맞는 것인지, 그 광고를 봤더니 그 상황에 그 음식이 생각났는지는 정밀한 결과를 내기 어려운 연구 주제일 듯하다. 일이 끝나면 시원하게 맥주 한 잔을 하고 싶고, 비가 추적거리며 오는 날엔 매운 국물이 맛깔스러운 라면이 먹고 싶고, 한겨울 뜨끈한 국물이 생각나면 우동을 먹고 싶다. 스포츠 경기를 볼 때 스트레스가 와장창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는 스낵은 꼭 있어야 하고, 날씬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가방에 몸에 좋은 차음료가 들어 있어야 한다. 상황에 맞는 음식이 아니라 음식에 맞는 상황을 만들게 되는 때도 없지는 않다. 광고의 힘은 세다. 현실을 반영한 광고가 아니라 현실을 직조하거나 현실을 리드하는 광고가 더 많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 나를 조정하는 게 지구 위에는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이 시작되면 비빔면, 일요일엔 짜파게티를 고전으로 알고 있는 우리에게 여름이 시작되는 이번 일요일엔 뭘 먹어야할까? 그럼 일요일엔 오뚜기 카레는...! 조 경 아 음식과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세상사에 관심이 많은 자칭‘호기심 대마왕’. 최근까지 잡지 ‘GQ’ ‘W’의 피처 디렉터로 활약하는 등, 12년째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는 전방위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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