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대왕세종’분장팀장,이학재“‘5분예술’태종수염…실은30년걸린거죠”

입력 2008-06-20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그냥 좋아서 오래했을 뿐이지, 재주도 이 것 밖에 없어서….” 달인의 대답은 의외로 담담했다. 현직 분장사 가운데 최고의 경력을 자랑하는 이학재 씨(53). 1979년 KBS 제작지원국 미술부로 입사해 30년간 분장 외길인생을 걸어왔다. 그는 퇴직 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다 현재는 KBS 아트비전의 협력업체인 이학재 프로덕션의 대표로 일하고 있다. 이학재씨는 현재 KBS 2TV 대하드라마 ‘대왕세종’의 분장팀장으로 출연자들의 모든 사극 분장을 책임지고 있다. ○ 수염도 배역 따라 색깔, 종류, 길이 달라 17일 오후 1시 KBS 수원드라마 센터 남자 분장실. ‘대왕세종’의 스튜디오 촬영을 앞두고 분장사 4명의 손길이 바빴다. 이학재 씨가 맡은 연기자는 태종 역의 김영철. 한참 턱수염을 붙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팀장은 ‘태종’이라고 쓰인 봉투에서 수염을 꺼냈다. 그런 다음 송진과 알콜을 혼합해서 만든 수염용 접착제 ‘스피리트 껌’(spirit gum)을 붓에 묻혀 김영철의 코 밑부터 발랐다. 이 접착제는 석유를 발라 떼야 할 만큼 접착력이 강하다. 주요 출연자만 사용한다는 ‘뜬 수염’(얇은 살색 망사 위에 코바늘로 일일이 손으로 심은 수염)을 먼저 붙이고, 그 위에 누에고치의 생사를 염색해서 만든 수염을 붙인 뒤 핀셋으로 한 올 한 올 살려 다듬는다. 이후 섬세한 가위질로 근엄한 콧수염과 턱수염을 만들어냈다. 이 팀장은 “‘보까시’라고 하는 이 분장 기술은 우리가 세계적이야”라고 말했다. 수염 붙이고, 가위질하고, 스프레이를 일명 ‘꼬챙이’ 빗 끝에 묻혀 수염 끝을 고정시켜주고, 드라이어로 말리는 많은 과정이 5분도 걸리지 않았다. “하루 아침에 되는 게 아니지. 초보 시절에는 가위질을 잘못해서 보조 연기자의 입술에 상처를 낸 적도 있어.” 그는 겸연쩍게 웃어보였지만 그날 이후 같은 실수를 다시 하지 않으려고 손에 물집이 잡힐 정도로 연습을 했다고 한다. 분장을 담당하는 데도 단계가 있다. 초보 시절에는 2∼3년간 보조출연자를, 연차가 좀 쌓이면 연기자를 맡고 이후 더 경력이 쌓이면 주요 출연진을 담당한다. 소품에도 ‘태종’과 ‘보조출연자’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태종, 세종 등이 사용하는 가발은 진짜 머리카락으로 만든 것이고 보조출연자들은 인조로 만든 가발을 쓴다. 주요 출연자 한사람당 분장 소요 시간은 30∼40분 정도, 엑스트라는 5분이 걸린다고 한다. ○ 사극 촬영 두 달 전부터 공부 ‘분장의 달인’ 이 팀장은 작품이 결정되면 인물 하나 하나 직접 손으로 그림을 그리며 캐릭터를 완성한다. 사극이다 보니 문헌 등에 나온 실제 인물을 참고하고, 연출자와 연기자의 협의 아래 컨셉트를 잡는다. 하지만 이렇게 공들여 작업한 결과도 실제 촬영에 들어가면 흡족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몇날 며칠을 고민해서 완성한 분장인데, TV에 나온 모습이 마음이 들지 않을 때 정말 후회된다.” 출연진이나 분장사나 겨울보다 여름이 작업하기 어렵다. 실내 세트장에 있는 분장실엔 에어콘이나 선풍기 등의 냉방 기기가 없다. 수염 붙일 때 약한 바람이라도 불면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명주사가 다 날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에 땀을 많이 흘려 메이크업 수정도 많이 해야 하고, 배우가 덥다고 시원한 물이나 음료수를 자주 마셔 물에 약한 수염이 녹는다. 그래서 요즘엔 명주사와 인조사를 섞어서 사용한다.” ‘대왕세종’ 분장팀은 모두 15명. 분장팀이 11명, 미용팀이 4명이다. 3∼4명의 여자 분장사는 여자 분장을 맡는다. 요즘은 어지간한 여배우들은 직접 코디네이터, 메이크업 담당을 두고 있어 분장팀에서 해줄 일이 별로 없다. 반면 남자 배우는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두 분장팀의 손을 거쳐야 하기에 손이 많이 간다. ○ ‘태종’역의 김영철 “그는 인간문화재” 하루에 많게는 서너 번 분장을 수정하고, 배우들의 식사 시간에 맞춰 대기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정작 분장사들은 끼니를 거르기 일쑤고 위장병을 달고 산다. “배우들이 연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야지. 식사를 한 배우들의 수염정리를 다시 해준 다음 배우들이 촬영에 들어가면 그때 밥 먹는 시간이다.” 수염에 상투까지 틀고 분장을 끝마친 김영철은 “그는 인간 문화재”라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김영철은 “분장도 최고지만, 분장 외적인 것도 세세하게 챙겨주는 사람이다. 최고 중에 최고”라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annjoy@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