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공은절대쉽게못친다”제구안될땐더강하게던져

입력 2008-07-0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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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엔 저 녀석 대답 한번 들으려면 반나절은 기다려야 했어요.” 두산 윤석환 투수코치는 요즘 투수 김명제(21)를 볼 때마다 “속이 다 시원하다”고 했다. 묻는 말마다 말꼬리를 흐리면서 수줍은 표정을 짓던 김명제가 이제는 씩씩하고 명확한 답변을 내놓기 때문이다. 확실히 김명제는 변했다. 단순히 성적 얘기만은 아니다. 쌓아올린 승수만큼 웃는 시간이 늘어났고, 적어진 볼넷만큼 고민의 시간이 줄었다. “이 정도 잘했다고 설레발치면 안돼요”라며 머리를 긁적이는 김명제. 그는 이제 두산의 ‘천덕꾸러기’에서 ‘차세대 에이스’로 탈바꿈했다. ○혹독한 성장통, 값비싼 수업료 2006년과 2007년. 김명제는 누구보다 혹독한 성장통을 겪었다. 값비싼 수업료도 치렀다. 두산은 김명제의 가능성에 꾸준한 도박을 걸었지만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2006년 3승11패에 방어율 4.46, 2007년 4승7패에 방어율 5.05. 잠재력은 쉽사리 꽃을 피우지 못했다. 계약금 6억원을 받고 화려하게 데뷔했던 어린 투수는 프로의 무서움을 체감했다. “제 부담감에 저 스스로 발목을 잡혔어요. 주변에서 기대가 크다는 걸 느끼게 되니 완벽해야 한다는 욕심과 강박관념에 시달렸죠.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모두가 ‘기회는 충분히 줬다’고 판단했다. 데뷔 첫 해의 활약상만 믿고 지켜보기엔 김명제가 너무 무기력해 보였다. 김경문 감독은 결국 지난 시즌 도중 김명제를 두 차례 2군으로 보냈다. “트레이드 카드로 내놓겠다”는 폭탄선언까지 했다. ‘나는 두산의 미래’라고 믿고 있던 김명제에게는 눈앞이 캄캄한 시련이었다. 기나긴 한 시즌이 끝난 후에도 “홀가분한 마음보다는 당장 ‘내년 시즌은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고 했다. ○김경문 감독의 한 마디 하지만 변화는 그 전부터 조금씩 찾아왔었다. 김명제가 아직도 기억하는 순간이 있다. 2군에서 올라와 감독실 문을 두드렸을 때, 김 감독은 대뜸 물었다. “내가 너에게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 것 같나.” 김명제는 대답을 못 했다. 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자신감이다. 마운드에 섰을 때 네 표정이 어떤지 한 번 봐라. 감독들은 공을 던지기 전에 주저하는 투수를 가장 싫어한다. 실력은 둘째 문제다. 펑펑 얻어맞아도 좋으니까 자신 있게 던지는 모습을 보여 봐라.” 김명제는 귀가하자마자 비디오로 녹화한 경기 장면을 몇 번이고 돌려봤다. 주눅 든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타자들이 얕보기 딱 좋았다. “제가 봐도 던지기 싫어하는 게 눈에 보였어요. 어두운 표정에, 인상이나 쓰고 있고.” 의식적으로라도 자신 있는 척, 웃으면서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신기하게도 그 때부터 운이 풀리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막아내는 경기가 많아졌고, 볼이 안 들어간다 싶은 날엔 타선이 점수를 내줬다. “100% 컨디션이어야 잘 던질 수 있다”는 강박관념도 버렸다. 올해 가장 달라진 부분이기도 하다. “사실 올 시즌에 좋은 컨디션으로 던진 경기는 세 경기 밖에 안됐어요. 하지만 안 좋을 때 경기를 풀어가는 방법을 조금 알게 된 것 같아요.” 모처럼 배시시 미소가 번졌다. ○되찾은 자신감 “내 공이 최고!” 2년 전. 지금보다 더 앳된 얼굴의 김명제는 “마운드에 올라가는 게 두려울 때도 있다”고 토로했었다. 나갈 때마다 대량실점을 하고 내려오니 공 던지는 게 즐거울 리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예전에는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던 다음 등판일이 올해는 참 빨리빨리 오는 것 같다”고 했다. 결과가 말해준다. ‘5이닝 선발’이었던 김명제는 올해 16경기에서 7이닝 이상을 세 번, 6이닝 이상을 세 번 던졌다. 지난해 9이닝당 3.98개의 4사구를 내줬지만 이번 시즌에는 6일 현재 삼성 이상목과 롯데 손민한의 뒤를 이어 9이닝당 4사구 허용률(2.81) 3위에 올라있다. 팀에서는 사실상 에이스 노릇을 하고 있다. 선발진 가운데 승수(6승)가 가장 많고 방어율(3.61)도 가장 좋다. 비결은 간단하다. 비로소 “내 공은 쉽게 못 친다”는 자신감과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잘 하면 된다”는 여유가 생겼다. 스트라이크가 안 들어가도 우왕좌왕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제구가 안 될 때마다 ‘공을 모시는’ 버릇이 있었다. “힘을 빼고 던지려다 릴리스포인트가 더 흔들렸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제는 더 강하게 던진다. 직구든 변화구든 늘 던지던 포인트는 잃지 않는다. 정면돌파. 김명제를 강하게 만든 키워드다. 그래도 그는 “절대 설레발치지 않겠다”고 거듭 말했다. 쉽게 흥분하지 않겠다는 각오가 단단하다. 욕심을 비워야 어깨도 가벼워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일까. 올해 목표는 단 하나다. “아프지 않고, 로테이션 거르지 않고, 두 자릿수 승수를 올리면 대만족이에요.” 소박해 보인다고? 김명제는 이 소망을 3년간 묵혀왔다. 배영은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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