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만난사람]박강성“폐인처럼산10년…미사리가나를구원했다”

입력 2008-07-1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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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성은 갑작스런 비에 승용차로 바꿔 타고 오느라 늦었다고 했다. 치솟는 기름값에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했다는 그는 이날 오토바이를 몰고 나오려다 비 때문에 포기했다. “올림픽대로에서 차가 상당히 밀렸다”며 에둘러 미안한 마음을 표현한 박강성은 경기도 남양주 집에서 광화문까지 바삐 왔다며 반갑게 손을 내밀었다. 그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흘렀다. 박강성은 ‘미사리의 서태지’ ‘미사리의 지오디’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경기도 남양주시 미사리 일대 라이브 카페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미사리 스타’라는 수식어는 언뜻 메이저 무대에서 ‘한물 간 스타’란 생각을 갖게도 한다. 하지만, 이는 박강성이 인생의 위기를 기회로 극복하며 얻어낸 값진 훈장이다. “인기에 대한 집착, 자살충동…10년간 폐인으로 살아” 박강성은 1982년 MBC 신인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4년이 지난 후 발표한 첫 앨범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1990년과 1992년 ‘장난감 병정’ ‘내일을 기다려’가 인기를 얻으며 이름은 알렸다. 하지만 비슷한 또래인 최성수, 김범룡, 임지훈과 자꾸 비교가 됐다. 조바심이 났고 불안감이 커졌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와 어린 조카가 잇따라 세상을 떠나는 등 집에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다. 형의 사업이 망하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이 계속됐다. 희망은 없었고, 정신적 스트레스도 극에 달했다. 자살충동이 자주 일었다. 죽으려고 술만 마셨다. 담배는 하루 서너갑씩 피워댔다. 그러다 폐질환이 왔다. 그런데도 술을 마셨다하면 기절할 정도로 마셨다. 이틀간 쓰러지는 일도 허다했다. 박강성은 이렇게 30대 중반에 꿈을 잃고 방황했다. 젊은 나이인데도 젊다는 생각을 못했다. 자꾸 누군가와 비교하게 됐다. 그는 심지어 20대의 젊은 청춘스타들과도 자신을 비교했다. 그 비교는 좌절을 만들고, 좌절은 또한 독한 술을 마시게 했다. 결국 박강성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해 이른바 ‘업소’에 나가게 됐다. 술 파는 곳에서 노래하긴 싫었다. 하지만 ‘먹고 살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럴수록 괴로움은 더욱 커갔고, 자신에 대한 실망도 커져갔다. “10년 정도를 그렇게 살며 인생의 최악의 시기를 보냈어요. 먹고 살기 위해 마구 노래를 했어요. 그런 내 자신이 비참했고, 왜 그것 때문에 노래해야하나. 내 삶의 가치를 위해 노래해야 되는데 말이에요. 그땐 정말 막 살았어요.” “한 여성 팬의 위로, 미사리 무대가 내 삶을 변화시켜” 인생 최악의 시기를 보내던 중 박강성은 1996년 은인 같은 여성 팬을 만나 새 삶을 찾게 됐다. 그녀는 박강성에게 자신감을 심어줬다. 박강성은 자신을 사로잡고 있던 원망과 세상에 대한 증오를 차츰 잊었다. 그 팬을 따라 교회에도 나가게 됐다. 그리고 98년 마침내 그 여성 팬과 결혼해 두 아이를 얻었다. “그동안 스타가 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던 거예요. 노래가 좋아서가 아니라…. 이를 깨닫고 무척 부끄러웠지요.” 신앙이 박강성에게 새 삶을 줬다면, 미사리는 박강성에게 가수로 다시 부활할 기회를 줬다. 노래를 부르려고 미사리의 한 카페를 찾았다가 자신의 노래를 들으러 온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박강성은 객석을 향해 “정말 내 노래를 들으려 왔느냐”고 질문했고, 관객들은 일제히 “맞다”고 소리치며 박수를 보냈다. 박강성은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구나. 내가 사랑을 받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 이후 이른바 ‘업소’에서 노래하는 것이 전혀 창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이후 박강성은 혼을 다한 노래를 들려줬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미사리의 서태지’라는 별칭을 얻게 됐다. “미사리는 어떤 느낌이냐면, 팬들과 항상 만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장소에요. 콘서트는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장소지만, 미사리는 2만 원이면 커피 한 잔에 케이크 한 조각 먹으며 부담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니 좋죠.” 하지만 박강성은 미사리의 무대가 결코 쉬운 곳이 아니라고 했다. “노래 한두 곡 히트했다고 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닙니다. 30, 40분 공연을 하면서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고, 실력과 감각은 물론, 히트곡까지 있어야 하죠.”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우울했던 과거에 감사한다” 박강성은 5개월 전부터 미사리 공연을 그만뒀다. 새 앨범 준비와 활동을 위해서다. 음반 활동 기간에는 목을 많이 써야 하는 미사리 활동을 자제하고 여유가 되면 다시 미사리를 찾겠다고 했다. 박강성은 7년 만에 6집 음반을 발표했다. 타이틀곡은 가요에 라틴음악을 접목한 ‘데킬라’다. 데뷔 26년간 처음 시도한 장르여서 무대에서 ‘뭔가’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박강성은 이번 앨범을 만들며 음악적 욕심을 포기했다. 그동안 신이 좋아하는 멜로디 스타일에만 빠져있었기에 이번엔 주위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자신의 색깔을 잃을 정도로 모든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가사는 6곡을 썼다. 모두 다 자신의 이야기가 바탕이 됐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방황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썼다. ‘사랑합니다’는 새 삶을 얻게 해준 아내에게 바치는 ‘연가’다. 박강성은 새로운 사업도 시작했다. 서울 구의동 중식 레스토랑을 7개월 전에 개업했다. 직원 14명의 비교적 큰 레스토랑이지만 미국산 쇠고기 파동 이후 매상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박강성은 삼선 짬뽕이 맛있다면서 “꼭 먹으러 오라”며 뒤돌아섰다. 박강성...? 1982년 MBC 신인가요제 대상으로 가수 데뷔해 올해로 26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6장의 앨범을 냈으며 ‘장난감 병정’ ‘내일을 기다려’ ‘문밖에 있는 그대’ 등이 그의 대표곡이다. 경력에 비해 적은 앨범 숫자에 대해 박강성은 “앨범은 3∼4년에 한 장씩 내는 게 좋다. 1년에 한 장씩 내는 가수들 보면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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