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운의차세대골키퍼차기석“두번의신장이식…날막을자없어”

입력 2008-08-2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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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손자 걱정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할아버지의 완고한 고집 덕분에 손자는 그토록 원하던 축구공을 다시 만질 수 있다는 한가닥 희망을 품게 됐다. 191cm의 훤칠한 키에 남다른 순발력을 가진 차기석(22)은 2002년 U-17 아시아청소년대회 MVP에 뽑히며 차세대 골키퍼로 각광받았다. 2005년 네덜란드 U-20 세계청소년대회에서는 올림픽대표팀 주전 골키퍼 정성룡(23)을 벤치에 앉혀둔 채 조별리그 3경기에서 모두 골문을 지켰다. 히딩크 감독의 부름으로 네덜란드 PSV에인트호벤에서 테스트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6년, 자신이 만성 신부전증 말기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들었다. 의사는 “선수 생활을 더 이상 하기 힘들 것이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차기석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신장으로 새 삶은 얻은 그는 지독한 재활 끝에 올 초 소속팀 전남의 터키 동계훈련 연습경기에 나설 정도로 정상 컨디션을 되찾았다. K리그 재기가 눈앞에 왔다고 느꼈을 때 또 한 번의 가혹한 시련이 찾아왔다. 터키에서 돌아온 후 찾은 병원에서 “이식받은 신장이 부적합하다. 재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은 것. 심지 굳던 차기석도 흔들렸다. 그렇게 방황하기를 한 달. 그를 붙든 것은 평소 맏손자를 끔찍하게 위했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의 간곡한 부름에 친척들 모두가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고 작은아버지의 신장이 차기석의 그것과 100% 가까이 일치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렇게 차기석은 작은아버지로부터 두 번째 신장을 받았다. 신장은 얻었지만 할아버지는 보내야 했다. 할아버지는 차기석의 수술이 끝난 직후 운명을 달리했다. 소속팀도 잃었다. 그동안 꾸준히 차기석의 재기를 도왔던 전남 구단도 더 이상은 힘들다는 뜻을 표했다. 차기석은 “구단도 할 만큼 했다. 충분히 이해한다”며 담담하게 계약해지 도장을 찍었다. 차기석은 또 다시 고통스런 재활을 눈앞에 두고 있다. 100% 회복돼 그라운드에 선다는 보장도 없고 돌아갈 팀도 없지만 최소한의 희망은 가질 수 있기에 그는 울지 않는다. “운동을 다시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게 어디에요. 감동적인 드라마 한 번 써 볼게요.”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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