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머리’는 따로 있다는 말이 있다.
그 말인즉슨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 머리 좋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해서 반드시 바둑을 잘 둘 수 있다는 게 아니라는 얘기이다.
프로기사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누가 봐도 머리가 착착 돌아가는, ‘천재 끼’가 다분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저 사람은 도대체 바둑을 안 두었으면 뭐가 됐을까?(죄송)’싶은 사람들도 없지 않다.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대화를 하고 있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세상 돌아가는 걸 한 평생 시골에서 농사만 짓고 산 노인네보다 모른다. 그런데 바둑판 앞에만 앉으면 송곳처럼 뾰족해지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가끔은 이런 사람들을 지극히 사랑하사 신이 ‘프로기사’란 직업을 창조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유창혁은 적어도 후자는 아니다.그는 다방면에서 천재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다. 직접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프로기사답지 않은(또 죄송) 해학과 세상을 보는 깊은 눈에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바둑에서 묘수를 두듯, 그는 세상사를 묘수처럼 살아간다. 그와 함께 있다 보면 이쪽도 머리가 좋아지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실전> 흑5로 들여다본 수가 거의 패착이다. <해설1> 흑1로 뛰어 중앙 백을 계속 공격했어야 했다. 백2에는 기분 좋게 3으로 백의 진로를 막는다. 이렇게 되면 사방의 백이 엷어진다. 흑이 재미있는 바둑이 된다.
<실전> 흑7을 놓는 권오민의 마음이 얼마나 쓰릴까. <해설2>를 보자.
흑이 ▲의 체면을 살리기 위해선 1로 늘어야 한다.
그러나 2로 백이 연결해가 버리면 체면이고 뭐고 흑이 망가져버린다. 보다시피 흑 상변이 거꾸로 곤마신세가 된다.
초반부터 권오민이 흔들리고 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