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루수조성환과페드로이아의MVP

입력 2008-09-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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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이맘때면 각종 개인 타이틀 논쟁으로 야구관련 사이트가 후끈 달아오른다. 이번 시즌도 달라진 게 없다. 타율, 최다안타, 홈런, 득점,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등 여러 부문에서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면서 야구팬들의 토론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특히 이번 시즌에는 MVP 타이틀에 가장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많은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며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만, 리그를 지배할만한 성적을 기록중인 선수가 없어 MVP를 찾기가 쉽지 않다. 김현수(두산), 김광현(SK), 가르시아(롯데), 김태균(한화), 오승환(삼성) 등이 MVP로 거론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몰표를 받을만한 선수는 없어 보인다. 유력한 후보는 아니지만 롯데의 2루수 조성환은 MVP를 수상할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이번 시즌처럼 강력한 MVP가 후보가 없는 상황이라면 조성환 같은 미들인필더가 MVP를 차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동안 MVP는 거포와 투수들이 지나치게 나눠가진 경향이 있다. 한번쯤은 틀에서 벗어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2루수가 MVP를 수상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다. 1993년 김성래가 MVP를 차지했을 때는 1루수로 포지션을 바꾼 뒤였다. 조성환과 보스턴 레드삭스의 2루수 더스틴 페드로이아를 비교하며 MVP 후보를 예상한다면 더욱 흥미롭다. 두 선수 모두 MVP를 받기 쉽지 않은 포지션인 2루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이번 시즌 엄청난 팀 기여도를 보여주고 있다. MVP 수상에 유리한 홈런, 타점, OPS에서는 밀리는 모습이지만, 기록으로 평가하기 힘든 항목에서는 단연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다. 메이저리그도 이번 시즌 마땅한 MVP 후보가 없다. 그런 가운데 보스턴 레드삭스의 더스틴 페드로이아가 유력한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페드로이아는 조성환과 같은 포지션인 2루수. 지난해 신인왕을 차지하더니 1년만에 MVP급 플레이어로 성장했다. 페드로이아의 성적은 다른 OPS형 거포들에게 많이 밀린다. 타율 1위(0.320)를 지키고 있고, 200안타-50 2루타를 달성했지만 홈런(17)과 타점(78)은 다른 경쟁자들에 한참 뒤져 있다. 팀동료 케빈 유킬리스(홈런 25 타점 102 타율 0.310)에게도 주요 공격 부문에서 밀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스턴 언론과 팬들은 페드로이아의 MVP 수상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페드로이아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관중들은 ‘MVP’를 연호한다. 보스턴뿐만 아니라 ESPN 등 주요 스포츠채널도 페드로이아가 MVP를 수상할 자격이 높은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페드로이아가 유킬리스나 다른 선수들보다 앞서 있는 점은 무엇일까. 타격 1위를 지키고 있다는 프리미엄도 있지만 페드로이아의 진정한 가치는 다른 곳에서 나온다. 먼저 미들인필더를 맡고 있다는 점. 지난해 내셔널리그 MVP를 수상한 지미 롤린스(필라델피아)처럼 페드로이아도 미들인필더로 활약하고 있다. 2루 포지션에서 골드글러브급 수비를 선보이면서 엄청난 공격력까지 자랑하는 선수를 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페드로이아에게서 크랙 비지오나 로베르토 알로마의 모습이 비춰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온 몸을 던지는 허슬플레이로 보스턴의 스타플레이어들을 자극하고 있으며, 클러치히터로서의 능력도 수준급이다. 게다가 매니 라미레스의 트레이드와 데이빗 오티즈가 부상으로 빠진 상황에서는 팀의 리더를 맡아 어려움에 빠진 팀을 훌륭하게 이끌었다. 노마 가르시아파라가 팀을 떠나면서 몇 년 동안 공석이었던 리더 자리도 페드로이아로 대신할 수 있게 됐다. 지구우승을 노리고 있는 보스턴의 뛰어난 팀성적도 페드로이아의 MVP 수상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팀에서 가장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는 것과 득점-최다안타 부문에서도 메이저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점도 페드로이아를 유력한 MVP 후보로 만들고 있다. 조성환도 페드로이아와 닮은 점이 많다. 개인성적에서는 김태균, 김현수, 가르시아에게 밀리는 것이 사실이지만, 만년꼴찌였던 롯데의 고질적인 문제점이었던 2루수와 3번타자 부재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한 것이 조성환이다. 또 무려 15개의 결승타를 때려내며 이번 시즌 최고의 클러치히터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시즌 초반 오승환을 무너뜨렸던 것을 비롯해 결정적인 순간마다 적시타와 홈런포를 때려 가라 앉을 뻔했던 팀을 구해냈다. 순위 싸움이 치열한 시즌 후반에도 많은 타점으로 해결사 역할을 해내고 있다. 롯데의 구름관중 뒤에는 사직을 울린 결승타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수비와 주루에서도 조성환의 활약은 돋보인다. 화려한 수비는 아니지만 견고함을 자랑한다.무엇보다 그의 움직임에는 투혼이 담겨 있다. 몸을 던지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으며 부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또 주루에서도 29개의 도루로 이대호와 가르시아에게 득점찬스를 제공했다. 조성환의 높은 도루성공률과 수준 높은 주루센스는 롯데의 빼 놓을 수 없는 공격옵션이 됐다. 리더로서의 역할은 조성환을 따를 선수가 없다. 주장 정수근이 방출되면서 큰 위기를 맞았을 때 그 자리를 대신한 선수가 조성환이다. 그는 젊은 선수들을 훌륭하게 이끌어 주장과 주전의 역할을 모두 훌륭하게 수행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홈런을 제외한 공격 전 부문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도 개인타이틀 1위가 하나도 없다는 것. 페드로이아와 조성환의 차이점은 여기에 있다. 막판 몰아치기로 최다안타라도 차지한다면 MVP 투표에서 좀 더 어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조성환은 오랜 공백을 깨고 4년만에 팀에 돌아온 선수라는 동정표를 얻을 수 있다. 또 롯데라는 팀은 보스턴처럼 매년 가을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팀이 아니다. 포스트시즌 무대를 밟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왔다. 팀 성적이 MVP 투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을 감안했을 때 팀 성적 혜택을 가장 많이 누릴 수 있는 선수가 조성환이다. 프로야구 출범 후 지금까지의 MVP 투표결과를 봐왔을 때 현실적으로 조성환이 MVP를 차지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번 시즌 조성환이 보여준 뛰어난 활약과 멋진 투혼을 가볍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 어쩌면 롯데 팬들에게는 박정태에 대한 그리움을 잊게 해줬다는 것만으로 이미 가장 가치 있는 선수로 기억돼 있을 것이다. 임동훈 기자 arod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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