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애프터]뼈가되고살이된좌충우돌유학기

입력 2008-09-3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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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유학기가 있었기에 이정준(24·안양시청)의 기록은 더 빛난다. 상하이제2체육학교 시절. 이정준은 조선족통역에게 월100만원 가까운 돈을 줬다. 다른 통역보다 비쌌지만 “자신이 학교의 공식통역”이라고 했기에 큰 돈을 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이정준은 통역을 해고했고, 학교 측에서도 이 사람이 학교에 발을 못 붙이도록 했다. 알고 보니 이 사기꾼은 조직폭력배의 일원이었다. “밤길을 조심하라”고 위협해 이정준은 숙소 안 침대의 베갯잇 아래에 칼을 숨겨두고 잠을 잤다. 조그만 소리라도 날 성 싶으면 선잠에서 깨어나 칼을 잡았다. 다행히 불상사는 없었지만 한 동안 가슴을 졸여야 했다. 일본에서도 고난의 행군은 계속됐다. 높은 물가 때문에 빵과 우유로 끼니를 때우기가 일쑤. 관광비자로 일본유학길에 오른 이정준은 안정적인 거처도 없이 호텔과 자취방을 오갔다. 이사를 할 때면 가스를 열어달라는 의사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통역을 해주겠다던 유학생은 알고 보니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있었다. 난방도 안 되는 얼음장 같은 방에서 일주일을 지내기도 했다. 5월, 사이타마에서 열린 동일본실업단선수권대회. 이정준은 13초56으로 결승선을 통과, 한국육상사상 최초로 남자110m허들에서 13초5대에 진입했다. 기쁨도 잠시. 마침 그 날은 이사가 예정돼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추적추적 내리는 비. 혼자서 봇짐을 메고 새집에 들어갔다. 짐 정리를 마치자 감기기운이 올라왔다. 이정준의 눈은 젖어들었다. 이정준은 “그렇게 고생을 했기에 미국에 간다고 나설 수 있었다”고 했다. 이제 겨우 24세, 지난 2년간 유학길에 쓴 자비는 5000만원. ‘젊어서 고생을 사서 한’ 그의 앞길은 밝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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