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바둑관전기]승부사는폼을잡지않는다

입력 2008-10-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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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의 바둑은 알기 쉽다. 때로는 너무나도 알기 쉬워 밋밋해 보이기조차 한다. 그러나 진정한 그의 강미(强美)는 알기 쉽게 두어 이긴다는 데에 있다. 누구도 둘 수 있지만, 누구도 이창호처럼 이길 수 없기에 그의 바둑은 신비롭다. 이창호의 바둑은 ‘폼’을 잡지 않는다. 화려한 이단돌려차기, 플라잉 니킥 같은 기술을 그의 바둑에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는 고도로 정련된 정권 지르기가 어설픈 하이킥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이창호는 무섭다. 진짜 승부사는 폼을 잡지 않는 것이다. <실전> 흑1로 다가서니 백은 2로 벌려 자리를 잡았다. 당연한 흐름이다. 여기까지 바둑은 쌍방 팽팽한 호각을 이루고 있다. 이창호가 흑3으로 귀를 단속하자 백이 4로 당장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것이 패착이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흑이 5로 붙이는 순간 백홍석의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고 말았다. 고민 끝에 백6·8로 흑 석 점을 잡았지만 상변은 흑에게 뚫려버렸다. 백4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프로들은 이런 장면을 두고 “백 한 점이 썩어버렸다”라고 표현한다. <해설1> 백1·3이 알기 쉽다. 백홍석은 백3을 둘 경우 이창호가 고분고분 4로 받아주지 않을 것이 우려되었던 모양이지만 국후 이창호는 “백3이었다면 흑4로 두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복기에서 백홍석은 <해설2> 백1로 두어야 했다며 후회했다. 역시 이창호는 2로 받는다. <해설1>이든 <해설2>든 백은 상변에서 손을 빼 큰 자리로 갈 수 있다. 어떻게 두든 실전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백홍석의 눈에 살기가 돈다. 비세를 읽은 것이다. 그의 수는 이제부터 독기를 품을 것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해설|김영삼 8단 1974ysk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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