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동민“올림픽2연패”…태권V 1호야망

입력 2008-10-0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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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3일 오후 9시44분(한국시간), 대한민국 국민들의 이목은 온통 베이징 우커송야구장으로 집중돼 있었다. 3-2로 앞선 한국의 9회초 공격이 시작되는 순간, 야구중계화면 아래로 ‘태권도 남자 +80kg 차동민 금메달’이라는 자막이 스쳐지나갔다. 30분 뒤, 야구대표팀은 금메달을 확정지었다. 그 시간 차동민(22·한체대4)은 시상대에 오르고 있었다. 국민들은 가장 감동적인 금메달로 야구를 꼽는다. 그 빛나는 크기만큼 차동민의 금빛은 바랬다. 중계방송에서도 외면당한 금메달리스트, 차동민을 만났다. “야구에 묻히기는 했지만 어차피 유명해지고 싶어 금메달을 따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요즘만 같아라 금메달 이후 연습을 게을리 할 만도 하지만 차동민은 훈련시간 30분전에 체육관 문을 두드린다. 때문에 후배들은 더 빨리 훈련장을 찾는다. “요즘 기분이 좋아서 그런지 아무리 몸을 움직여도 피곤한 줄 모르겠다.” 한체대 곳곳에는 차동민의 금메달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보고 또 보고. 자신이 봐도 대견스러운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때때로 사인을 요청하는 동료들이 있을 정도로 학교에서는 스타다. 운동을 마치면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 추리소설을 보며 마치 상대의 발차기를 예측하듯 다음 장을 그려본다. 올림픽을 치르며 교수라는 꿈은 더 구체적이 됐다. 롤 모델은 대표팀 코치였던 한체대 문원재(46) 교수. “문 교수님이 내게 도움을 줬던 것처럼 이론과 실기를 접목해 보고 싶다.” 하루에 영어 단어도 6개씩 꼬박꼬박 외운다. “6개는 너무 적지 않냐?”고 물었더니 “일년이면 2000여개, 5년이면 1만개”라며 다그친다. 많은 이들이 ‘+80kg급은 안 된다’고 했지만 한 걸음씩 쌓아온 그였기에 차근차근 셈법에 강했다. ○약하다는 말이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올림픽 준비과정은 스트레스와의 싸움이었다. “한국 출전체급 중 가장 약하다는 말, 잘해야 2-3등이라는 평가에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그래서 이를 악물었다. 강력한 라이벌로 꼽히던 다바 모디보 케이타(말리)의 신장은 210cm. 결승전 상대였던 알렉산드로스 니콜라이디스(그리스)도 2m가 넘었다. 차동민의 신장은 189cm, 국내에서는 가장 큰 축에 속했다. 마땅한 파트너가 없었다. 긴 막대기에 미트를 붙여 상대의 긴 다리라고 생각하고 연습을 했다. 6월, 네덜란드 전지훈련에서는 유렵의 장신들과 겨뤘다. 올림픽이 다가올수록 강해짐을 느꼈다. 예감도 좋았다. 베이징에서 받은 배번은 121. 서울체고 동기 임수정(22·경희대)이 “네가 12번째 1등을 할 징조”라고 했다. 결국 차동민은 한국선수단에 12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케이타가 나이지리아의 복병에게 덜미를 잡힌 것도 행운이었다. ○큰절 세리머니도 했는데…. 하지만 임수정, 손태진(20·삼성에스원), 황경선(22·한체대)이 앞서 3개의 금메달을 거머쥔 것이 차동민에게는 또 다른 부담이었다. 운명의 결승전, 1회전에서 2점을 뺏겼다. 차동민은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고 했다. 분명 같이 때렸는데 상대의 포인트만 올라갔다. ‘한국의 금메달 독식을 막으려는 것인가’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쯤 되니 앞뒤 가릴 일이 없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고 내려가자. 그래야 후회가 없다.’ 돌려차기에 얼굴 공격까지. 결국 후회 없는 역전승을 일궜다. 순간 황경선, 임수정 두 동기생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는 경황이 없어 세리머니 못했으니 넌 꼭 해야 돼.” 셋은 태권도 선수답게 가장 한국적인 세리머니를 기획했었다. 관중석을 향해 큰 절을 올렸다. 야심차게 준비했지만 중계를 안 한 탓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약간 서운하기도 한 모양. “윙크도 한 번 하고 싶었는데 카메라가 멀리 있었다.” ○런던에서는 화끈한 KO로 금 딴다 남자 +80kg급은 태권도의 꽃이라고 불린다. 한국은 2000시드니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이후 이 체급 정상을 놓치지 않았다. 차동민은 이 체급에서 역대 최연소(22세)로 금메달을 땄다. 시드니올림픽 당시 김경훈은 25세, 아테네올림픽에서 문대성은 28세였다. 차동민은 “최소한 28-29세까지는 선수생활을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다음 목표는 한국의 태권도 사상 최초의 올림픽 2연패 도전. “그때는 4년 전 문대성 선배처럼 화끈하게 KO로 이기고 싶다.” 문원재 교수는 “웨이트트레이닝을 통해 서양선수들에 밀리지 않는 체력을 길러야 하고, 담력을 더 쌓아야한다”고 조언했다. 차동민은 싸움 한 번 해본 적 없을 정도로 겁이 많다. 번지점프는 꿈도 못 꾼다. 강한 상대를 만나면 위축될 만큼 소심한 면이 있다. 하지만 걱정이 많은 만큼 세심한 장점도 있다. 대회준비를 할 때면 누구보다도 꼼꼼하다. 차동민은 “올림픽의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 충전”이라고 했다. 금빛발차기로 소심함은 날리되, 세심함은 간직했다. “빨리 세계 최강이라는 케이타와 겨뤄보고 싶다. 그렇게 많이 연구했는데 올림픽에서 중도 탈락해 허무한 감도 있었다.” 챔피언의 자리를 지키려는 차동민의 눈빛은 빛났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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