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에 야구만 보러 가는 당신은 둘 중 하나다. 오로지 야구 외엔 보이는 것이 없는 야구 중독자이거나 야구장을 처음 방문한 ‘생초보’. 야구장은 보고, 놀고, 먹는 복합 레저문화공간으로 진화했다. 멋진 경기를 눈으로 보고, 한바탕 축제분위기의 응원을 즐기는 곳이 야구장이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게 빠졌다. 식후에 구경할 것은 금강산만이 아니다. 야구장의 먹거리는 세월 따라 풍속 따라 변신을 거듭해 왔다. 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삶은 계란의 전설’로부터 작금의 KFC 치킨과, 버거킹 버거세트에 이르기까지 야구장 먹거리 변천사는 한국야구의 그것과 별 다를 게 없었다. 과연 우리나라 야구장의 먹거리들은 어떻게 변해 왔을까? ○1980년대 - ‘쥐약’의 반가움 술은 절대 반입금지. 그렇다고 경기 중 홀짝이는 소주 맛 좋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다. 큰 보따리를 든 아저씨들이 관람석 사이사이를 누비며 “쥐약 있어요∼ 쥐약 ∼”을 외치고 다녔다. 졸지에 ‘쥐약’이란 가면을 쓴 관광 팩 소주가 마른 오징어 한 마리와 한 세트로 팔렸다. 아빠 따라와 칭얼대는 아이들에겐 부라보 콘을 쥐어주면 그만. 오징어 몸통은 아들 몫, 다리는 ‘쥐약’과 함께 아빠의 차지였다. 맥주는 의외로 비인기 품목이었는데, 비좁은 관중석 사이를 뚫고 화장실을 들락거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오리지널 통닭과 족발을 즐기기도 했다. ○1990년대 - 컵라면은 필수품 80년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은 가운데 90년대를 대표하는 신종 먹거리는 컵라면이었다. 구장 시설이 좋아지면서 맥주의 인기도 급상승했다. 특히 비 오는 날 야구장에서 먹는 컵라면의 맛은 잊을 수 없다. 너도 나도 라면을 후루룩거리다 보니 흥분한 관중들이 먹다 만 라면 그릇을 그라운드를 향해 집어던지는 사건이 왕왕 벌어지기도 했다. 앞쪽에 앉았다가 뒤에서 날아온 컵라면 용기를 머리에 뒤집어쓰는 참담한 경우를 당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2000년대 이후 - 구장 속 진수성찬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야구장의 먹거리는 실로 다양해졌다. 이제는 야구장에서 ‘무엇을 먹느냐’가 아니라 ‘무엇인들 먹지 못하랴’의 시대가 됐다. 맥주 판매가 허용되고부터는 맥주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안주형 품목들이, 특히 젊은 층이 야구장을 많이 찾으면서 피자, 치킨, 햄버거 등이 인기를 끌었다. 야구장 안에는 패스트푸드점들이 줄줄이 입성했다. 구장 앞에는 김밥, 초밥, 오징어, 족발 따위를 파는 상인들이 성시를 이룬다. 그 중에서도 프라이드·양념치킨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일찍 경기장에 입장한 사람들이 시간을 때우기에도 치킨만한 게 없다. 항구도시답게 부산 사직구장에서는 회 한 접시를 즐기며 야구를 보는 관객들도 만날 수 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