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똥고집박씨남자들어쩌죠

입력 2008-10-1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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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고 떼를 썼습니다. 하지만 여유가 없어서 계속 못 사주고 말았습니다.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지역 문화센터에서 바이올린을 배울 기회가 또 생기게 됐습니다. 바이올린을 빌려주기도 했는데, 여름방학 내내 제 아들이 얼마나 열심히 다니던지, 가르치는 선생님의 칭찬이 대단했습니다. 결국 남편과 상의를 해서 바이올린을 싼 거라도 하나 사주기로 했습니다. 타지에서 일하고 있는 남편이 모처럼 휴가를 받아 집으로 오던 날, 저희 가족은 집 앞 마트에 있는 악기점으로 바이올린을 사러 갔습니다. 악기점을 향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이동하고 있을 때, 문득 제 아들이 “아빠! 전요∼ 영어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수능 때까지만 공부하고 그 뒤에는 영어 공부 안 할 거예요” 이런 얘기를 꺼낸 겁니다. 굳이 안 해도 될 얘기를, 왜 하필 제 아들은 그 때 꺼냈는지… 전 순간 너무 당혹스러워서 남편을 쳐다봤습니다. 그 얘기가 맘에 안 들었던 제 남편은 헛기침을 한번 하더니 그래도 점잖은 목소리로 “영어는 평생 공부해야 되는 거야. 영어 모르면 아무것도 안 돼”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전요∼ 우리나라 교육정책이 문제가 있다고 봐요. 아무리 영어가 세계 공용어라지만 영어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 문제없잖아요. 그런데 왜 모두 영어전공자라도 될 것처럼, 비싼 학원비 들이고, 과외비 들여서 공부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아들은 눈치도 없이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성질 급한 남편은 두 번을 못 참고 바로 목소리 톤을 올리며 “그게 다 필요하니까 하는 거지, 필요 없는 데 왜 하겠냐! 이 세상이 다 너 중심으로 돌아가는 줄 알아? 네가 이 세상에 맞춰야 살아갈 거 아니야! 그게 싫으면 네가 힘을 키워서 세상을 바꾸던가!” 하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고집 센 박 씨 집안의 두 남자는 끝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고 목소리 높여 싸웠습니다. 결국 악기점엔 들르지도 못 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아들 옆구리를 찌르며 빨리 가서 아빠 마음을 풀어주라고 신호를 보냈습니다. 아들은 그렇게는 하지 않겠다며 끝까지 버텼습니다. 그날, 외식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 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도 안하고 베란다에서 담배만 피우고 있고, 아들은 저를 불러서 “정말 아빠 이상해∼” 하면서 불만을 털어놓았습니다. 잠시 후 남편이 저를 불렀고 저는 또 남편한테 달려가서 그 하소연을 다 들어줘야 했습니다. 사실 남편이 그렇게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애를 무안하게 만들 필요도 없었고, 아들도 괜히 그런 얘기로 아빠 기분을 건드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두 사람 다 어찌나 고집이 센지 서로 잘났다며 씩씩거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남편은 그대로 일하는 곳으로 떠나버렸고, 아들은 나중에 후회가 됐는지 사과한다면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들이 “아빠! 사실은요” 하면서 얘기를 꺼냈습니다. 제 남편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대뜸 “엄마 바꿔라” 하더니 저한테 “니 절대로 바이올린 사주면 안 된다. 사주면 가만 안 둔다!”이러고 딱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들은 저를 붙잡고 내년에 꼭 사달라고 조르고 있는데, 저는 어쩔줄 몰라 머리만 붙잡고 있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더니… 고집 센 박 씨 남자들 때문에 머리 아파 죽겠습니다. 경남 창원 | 여은경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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