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영은이상우의행복한아침편지]우리아버지의‘즐거운인생’

입력 2008-10-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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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작년 말에 38년 동안 다니셨던 직장에서 정년퇴직 하셨습니다. 퇴직 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많이 고민하셨습니다. 그런데 영화 ‘즐거운 인생’을 보시고 나서는 키보드를 연주하며 위문공연을 다녔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피아노학원에 등록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원래 노래 부르고 음악 듣는 걸 좋아하셨습니다. 제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 성적이 잘 안 나와서 힘들어하거나 지쳐있으면 아버지께서 저를 노래방으로 부르셔서 스트레스를 풀게 해주셨습니다. 하도 자주 가니까 나중엔 노래방 주인아주머니가 저희 부자만 가면 40분씩 서비스를 팍팍 넣어주시곤 하셨습니다. 그렇게 1시간 40분을 신나게 노래 부르고 나면 일주일을 아주 잘 보낼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노래를 부른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젊은 사람 노래를 열심히 듣고 배우셔서, 항상 저와 같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오셨습니다. 제 친구들은 그런 거 보고 정말 많이 부러워했습니다. 요즘 아버지는 어린 아이처럼 피아노 학원에 가서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배우고 계신데, 솔직히 저희 가족은 아버지가 몇 번 하시다가 그만두실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벌써 7개월 째 배우면서‘체르니 30번’까지 치고 계십니다. 가끔 학원에 가면 꼬마 아이들이 모여들어서 “아저씨 이거 왜 배우세요?” 하고 물어본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열심히 배워서 꼭 ‘체르니 30번’을 다 떼시겠다고 그러십니다. 아버지는 댄스 스포츠도 배우고 싶어 하는데, 어머니께서 오래 전부터 댄스 스포츠를 춰오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께 좀 가르쳐 달라고 부탁을 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부부간에 뭘 배운다는 게 쉽지가 않습니다. 운전도 부부간에 배우면 안 된다고 하는 것처럼 두 분은 스포츠 댄스 추다가 싸우는 날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춤 가르쳐주기 싫으면 가르쳐주지 마. 내가 나가서 배워 올거야” 하시더니 주민센터에 나가셔서 요즘 열심히 배우고 계십니다. 거기엔 옆집 아주머니도 같이 다니시는데, 그분이 아버지 춤 추실 때 파트너이신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그 옆집 아주머니께서 엄마에게 오시더니 “내가 너한테 배워서 지금 너 신랑을 가르치고 있다. 너무 재밌지 않니? 근데 너네 신랑 아주 잘추더라∼ 배운지 얼마 안 됐는데 아주 잘해∼” 하셨습니다. 정말 아버지는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퇴직 후 달라지신 게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누나와 사이가 좋아졌다는 점입니다. 누나는 아버지가 항상 아들만 챙기는 것 같다고 많이 서운해 했습니다. 지난번에 누나가 설거지 할 때 아버지가 다가가셔서 대신 해주셨습니다. 그 일로 요즘 부녀사이가 아주 돈독해졌습니다. 아버지는 아침 설거지를 하실 때 항상 9시 5분에 시작하십니다. 항상 라디오 사연 들으시면서 설거지를 하십니다. 그리고 그 날 재밌는 사연이 있으면 저녁에 저희가 들어가면 얘기도 해주십니다. 퇴임 후 과연 어떻게 지내실까 걱정 많이 했는데, 지금은 늘 즐겁고 건강하게 지내고 계셔서 참 보기 좋습니다. “아버지 저 제대하면 영화도 많이 보고, 노래방도 많이 가요∼ 아버지 참 보기 좋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강원 속초 | 이명환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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