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기다림+배려…삶은감동이다”

입력 2008-10-16 00:0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2008장애인에게여행의자유를…
“매우 험난한 길뿐이다.” ‘감동 투어 3박 4일’일본 나가사키 여행을 마친 바로 다음 날 한국 도로에서 느낀 것이다. 문턱이 높고 계단이 많은 서울의 건물과 길에서, 일본 여행을 함께한 ‘동반자들’이 떠올랐다. 지난 6일부터 9일까지 장애인 19명과 동반 보호자를 포함해 총 37명이 일본 큐슈 나가사키 지역을 방문했다. (주)에프아이투어 여행박사(대표이사 신창연, 이정주)가 ‘2008 장애인에게 여행의 자유를’이라는 주제로 진행한 여행 행사였다. 해외여행 경험이 전혀 없는 장애인과 장애인 보호자를 선발해 무료로 여행 기회를 줬다. 여행박사와 아름다운 재단이 함께 운영하는 네이버 해피빈에 사연을 올린 장애인들이 선정됐다.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떠난 여행, 그것은 아직까지는 커다란 이벤트였다. 장애인들이 거리낌 없이 훌훌 일상을 털고 여행을 떠나는 날은 언제일까? ‘2008 장애인에게 여행의 자유를’ 행사는 장애인 해외여행이 유별난 사건이 아니라, 일상적인 권리가 될 수 있는 희망이 엿보인 자리였다. ○개인의 정성이 일궈낸 이벤트 ‘여행박사’의 이번 나가사키 장애인 투어가 올해로 3번째다. 장애인만을 위해 편의시설을 제공하고, 보호자들도 마음 편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직원 3명이 시작해 현재 300명이 일하고 있는 여행박사는 직원들이 각자 매월 월급의 10% 씩을 적립해 1억 원의 돈을 장애인 여행에 충당했다. 시기가 불경기인지라 반대도 많았지만, 1,2회를 진행한 스태프들이 돈으로 살 수 없는 값진 감동을 느낀 이후 포기할 수 없었다. 여행박사 정희연 일본 현지 팀장은 “올해는 무산될 뻔했는데, 이렇게 행사를 진행할 수 있게 돼 벅차다”고 말했다. 신창연 대표는 “굉장히 몸이 안 좋았을 때 장애인들을 만나고 좋아진 적이 있다. 거창하게 말하면 민망하고 제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느꼈다”고 행사를 개최한 이유를 밝혔다. “저도 잠재적 장애인이라고 생각한다. 역설적이지만 장애인이 많아져야 우리나라도 편의시설이 갖춰질는지…”라며 그는 안타까워했다. 장애인 투어에 참가한 인연으로 1회 행사에 참가한 장애인 어머니가 여행박사에 취직하기도 했다. 나가사키 일대를 관광 지역으로 선정한 것은 장애인들을 위한 기본 시설이 잘 돼있기 때문이다. 나가사키는 곳곳에 휠체어가 구비돼있고, 휠체어를 이용해 온천을 즐길 수 있도록 특수시설도 갖춰진 곳이다. ○장애인들의 이동이 보장된 일본 관광지 저출산 고령화 사회의 일본은 단체 노인 관광객을 유원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나가사키의 하우스텐보스와 사세보 지역은 노인들이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이용하기 쉽도록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숲 속의 집’이라는 뜻의 하우스텐보스는 풍차와 시계탑, 튤립 정원 등 17세기 네덜란드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해 놓은 리조트 형 테마파크다. ‘캔디숍 드로피에’, ‘치즈 마켓 치즈워프’ ‘테디베어숍’ 등 치즈 케이크나 캐릭터 상품을 살 수 있는 가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다. 매일 저녁 불꽃놀이나 퍼레이드가 벌어지며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도 거리 곳곳에서 동심에 빠지게 된다. 장애인 여행팀은 하우스텐보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호라이즌 어드벤처’와 ‘키라라’를 이용했다. 두 시설 모두 통로에 장애인 전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 게다가 곳곳이 평지라서 이동이 자유롭다. 얼굴만한 크기의 햄버거가 유명한 사세보 유원지에서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펄퀸’ 유람선까지 공항처럼 긴 통로를 이용해 이동한다. 이 곳에는 특히 노인 관광객이 많은데, 주차장에서는 리프트가 장착된 차량도 쉽게 발견된다. ○저마다 ‘사연’이 가득한 감동 투어 “시각 장애인이 여행 하면 뭘 느낄까 하겠지만 후각, 촉각으로 많이 느낀다.” 이희정 자원봉사자는 일본 글로버엔 공원에서 박상천(시각장애) 씨에게 커다란 잉어를 설명하며 “팔뚝보다 더 크다”고 말해줬다. 실제로 보통 성인의 팔뚝보다 더 굵은 물고기들이 연못에 가득했다. 이번 행사는 서로가 서로의 발이 되고 귀가 된 여행이었다.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고 여유로웠다. 느림과 기다림이 함께 한 여행이었다. 휠체어를 탄 동료들을 위해 조금 더 기다려주는 것, 조금 느리게 가는 것에 모두가 익숙해졌다. 여행은 같은 장소에서 다른 추억을 만드는 동상이몽이 매력이지만, ‘2008 장애인에게 여행의 자유를’ 행사는 모두 ‘감동’과 ‘연민’이라는 공통의 느낌으로 묶였다. 해외여행은 말할 것도 없이 국내 여행도 하기 힘든 상황에서 찾은 일본이다. 구수한 사투리로 언제나 좌중을 웃음으로 이끈 장춘광(지체1급) 씨는 “뭐더러 간다냐. 고생 겁나게 한다”는 부모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적극적으로 관광을 즐겼다. 온천에 몸을 담근 후 “비행기 타고 배 탄 것도 처음이지만 대중탕에 와 본 것도 사고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라고 즐거워하며 “정말 사람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방 좀 내려놓고 예쁘게 찍으라”고 매번 부인의 옷깃을 여며주며 사진을 찍던 김상록(청각3급) 씨는 아내 방선자(청각2급) 씨와 제대로 된 여행을 해본 적이 없다. 결혼 26주년 만에 처음 맞은 여행에서 자상하고 꼼꼼하게 아내를 챙겼다. 김현우(지체1급) 씨와 오영자 씨 부부도 처음 맞은 신혼여행을 즐기며 “결혼할 때도 주변 사람들이 많이 울었는데, 오늘도 감격스럽다”며 스태프들이 준비한 11주년 결혼 기념케이크를 보며 눈물을 훔쳤다. 정다운(자폐성장애) 씨는 공항에서 “선생님 고맙습니다”라며 의료진에게 감사의 쪽지와 선물을 건넸다. 잔 근육을 쓸 수 없는 까닭에 커다랗게 쓴 글씨이지만 한자 한자 진심이 담겨있었다. 이번 여행은 오는 20일 오후 4시 10분 가수 강원래가 진행하는 KBS 1TV ‘사랑의 가족’을 통해 방송된다. 나가사키 |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