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영은기자의가을이야기]부상민병헌의오기

입력 2008-10-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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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깁스풀면‘죽기살기’로뛸겁니다”
두산 김경문 감독이 민병헌(21·사진)의 손을 덥석 잡습니다. 플레이오프 바로 전날(15일)입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한국시리즈에는 뛸 수 있겠지?” 민병헌이 대답합니다. “네! 뛸 수 있습니다.” 오른손에 여전히 깁스를 한 채로 말입니다. 두 사람은 이내 웃어버립니다. 부질없는 농담이었으니까요. 민병헌이 한국시리즈에 뛸 수 있다면, 그건 내년이 될 겁니다. 민병헌은 발이 빠릅니다. 이종욱, 고영민과 함께 ‘30도루 트리오’로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두산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지요. 그래서 올해 잠실구장 외야에는 세 사람의 도루수를 기록하는 숫자 판이 붙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이종욱과 고영민의 도루 수는 가파르게 늘어갑니다. 하지만 민병헌의 숫자는 겨우 10개를 넘긴 채 멈춰 있습니다. 좀처럼 경기에 나서지 못해서 입니다. 멈춰있는 숫자만큼 시간도 더디 갑니다. 단짝 김현수가 타격왕에 오르며 승승장구하는 모습도 2군에서 바라만 봐야했습니다. 시즌 중에는 그래도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손등 부상으로 2군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가을잔치까지 못 나가게 될까봐서요. 부상이 채 낫기도 전에 1군에 올라가겠다고 조른 건 그래서였습니다. 하지만 9월27일 잠실 삼성전에서 오른손 엄지가 부러졌습니다. 1루에서 리드 폭을 너무 넓혔다가 황급히 귀루하던 참이었습니다. 손을 베이스에 세게 부딪치고 일어나니 “손가락 하나가 아예 없는 느낌”이었답니다. 포스트시즌은 한 달 후면 끝나는데, 깁스를 푸는 데만도 4주가 걸린다고 하더랍니다. 4주 후면 한국시리즈까지 모두 끝나버리는데 말입니다. 1차전이 열리는 16일. 민병헌도 덕아웃에서 경기를 봤습니다. 출전선수들과는 따로 분리된 불펜 쪽 구석자리입니다. 마음이 아플 것 같아 몇 번이나 발걸음을 돌리려 했지만, ‘파이팅’이라도 외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습니다. 대신 이 날의 아쉬움을 절대 잊지 않을 거랍니다. 끝없이 넘어져도 매번 털고 일어나야 하는 게 프로선수의 숙명입니다. 그를 무척 아꼈던 김 감독도 말했습니다. “(민)병헌이에게는 아픈 한 해였을 거야. 하지만 성숙해가는 과정이라고 봐야지.” 민병헌은 이제 ‘죽기 살기로’ 자기 자리를 되찾겠답니다. 이 정도 일에 기죽지 않는답니다. 그럴 겁니다. 그는 이제 겨우 스물 한 살이니까요. 배영은 기자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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