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앤크라이존(선수대기석)에 들어선 김연아는 더블 악셀에서의 실수 탓인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점수를 확인하자 이내 환한 미소를 찾았다. 김연아의 전담코치 브라이언 오셔(46)가 경기 전 “젊은 여성으로 성장한 김연아의 영혼을 완벽하게 표현해줄 것”이라고 한 것처럼 요정은 이제 여신이 돼 있었다.
점프에는 힘이 붙었고, 스핀은 더 유연해졌다. 문제로 지적되던 체력도 3분 가까운 연기 내내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강해진 것은 표정연기였다. 2007년 3월, 러시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 ‘록산느의 탱고’에서 보여준 표독스러움은 더 강렬해졌다. 당시 전 세계 피겨관계자들은 ‘저 나이 대에서 절대로 할 수 없는 명연기’라고 감탄했고, ‘록산느의 탱고’는 역대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최고점수(71.95점)로 전설이 됐다.
‘죽음의 무도’는 한층 성숙해진 ‘록산느의 탱고’였다. 스파이럴에서의 손끝 표현은 스케이트 날보다 예리했다. 악(惡)한 듯한 눈빛은 빙판처럼 차갑게 빛나며, 모니카 벨루치의 그것처럼 관객들을 빨아들였다. 결국 심판진은 30.44점의 높은 예술점수를 안겼다. 김연아는 오프시즌을 시작하며 “어색한 표정연기를 보완하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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