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기자의音談패설]가야금의세계화꿈꾸는홍주희교수

입력 2009-01-13 07: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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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대학교 홍주희 교수(41·국악과)는 조금은 독특한 사람일지 모른다. 사실 ‘비인기종목’에 가까운 국악을 하는 이들의 고민은 한결같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국악의 참맛과 깊은 의미를 전하는 것. 홍 교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그런데 그녀는 일찌감치 밖으로 눈을 돌렸다. 국내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지만, 국악이 살 길은 의외로 국외에 있을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통음악이 외국인들에게 소위 ‘먹히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오래도록 고민해 왔다. 그런데 그 해답이 대충 나온 것 같다. 지난해 6월 홍 교수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한국전통음악연구회 ‘아랑주’, 가야금 앙상블그룹 ‘가얏고’, 거문고 퓨전팀 ‘다비’ 등을 이끌고 독일로 날아갔다. 2007년 공연의 대성황에 따른 앙코르 공연이었다. 홍 교수와 독일과의 인연은 2006년부터였다. 독일 100주년 기념음악회에 참석해 독주 프로그램 2개를 하고 돌아 왔다. 그런데 이때 홍 교수의 가야금 연주를 목도한 독일인들이 벼락을 맞은 듯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였다. 그냥 독일인도 아니고 음악적 자부심만큼은 ‘세계 1위’라는 독일 음악인들이었다. “가야금 주법, 특히 튕김, 연튕김 같은 빠른 손놀림을 보고 많이 놀라워하더라고요. 한국음악은 느린 음악만 있는 줄 알았던 거죠. 이듬해인 2007년에 정식으로 초청을 받았어요. 아예 한국음악을 위한 기획음악회를 열자고 했습니다.” 2007년 음악회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독일 현지의 숭배에 가까운 반응은 2008년 앙코르 공연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2008년 공연은 기획이 또 달라졌다. 독일 작곡가들이 작곡한 곡을 한국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파격적인 음악적 실험이 덧칠해진 것이다. 공연은 이틀 간 진행됐다. 이 중 둘째 날에 실험이 이루어졌다. 독일 작곡가들의 오리지널 창작곡들이 가야금과 거문고, 해금 등으로 연주됐다. 수원대 임진옥(국악과) 교수의 작품 ‘오동’도 초연됐다. 홍주희 교수가 독일 연주회를 통해 발견한 국악의 세계화 비법은 결국 ‘기본에 충실하자’라는 ‘기본’으로의 회귀였다. 홍 교수는 요즘 국악계에 유행하는 퓨전에 대해 좋게도, 나쁘게도 생각하지 않는 쪽이지만 기본에 대해서만큼은 단호하다. 제자들 중 퓨전에 몸담는 이들도 부쩍 많아졌다. 홍 교수가 대표로 있는 아랑주의 이름부터가 명주와 무명의 꼬임을 뜻하는 것으로, 옛 것과 새 것이 만난다는 공존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퓨전도 반드시 고전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죠. 셈여림이라든지 여러 표현력에 있어 고전은 기본을 충실히 해줍니다. 이게 완성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퓨전을 해도 소리가 약할 수밖에 없어요. 동그란 소리가 나야할 곳에서 일그러지기 일쑤고.” 또 하나의 비법은 다양한 음악적 시도이다. 가야금으로 가야금 곡만 연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판소리의 선율을 가야금으로 연주해 들려주는 것도 근사한 시도가 될 것이다. 저들의 음악으로 가까이 다가서는 것도 중요하다. 독일인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베토벤, 슈베르트 등의 음악을 우리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작업. 홍 교수팀은 독일 연주회에서 베토벤의 ‘Ich Liebe Dich’와 슈베르트의 ‘보리수’를 연주해 열렬한 호응을 끌어냈다. 독일음악을 한국의 악기로, 한국의 스타일로 연주한다는 것은 독일인들에게 있어 자신들의 음악이 한국으로부터 인정받고 존경받는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홍 교수에게 ‘가야금 예찬’을 부탁했더니 뜬금없이 ‘가야금은 배움’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가야금은 나이가 들수록 연주가 좋아져요. 표현과 구성력은 물론 기량도 젊은 사람들이 따라갈 수 없습니다. 오른손 역할은 그럭저럭 하지만 왼손의 농현은 어림도 없어요. 저도 배워가는 사람 중 한 명이죠. 가야금 연주자는 가야금 앞에서만이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것이 다 배움이에요.” 옆에 있던 홍 교수의 제자 안정희 씨가 CD 몇 장을 건네며 말했다. “우리 선생님요? 선생님 독주회가 끝나자 큰 선생님 한 분이 말씀하시더라고요. ‘가야금에는 성격이 묻어나는데, 네 선생은 참 착해. 가야금에 다 묻어나’라고. 가셔서 한 번 들어보세요. 선한 가야금 소리가 어떤 것인지.” 그 선생에 그 제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2007년과 2008년, 칼스루에 슈테판잘 공연장에 앉아 있던 독일인들의 느낌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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