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기자의音談패설]크로스오버음반으로컴백한테너박종호

입력 2008-12-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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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힘빼고눈물쏙뺐죠”
지난 11월 11일, 11곡이 수록된 음반 하나가 나왔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깜’이 안 된다. 하지만 이 음반의 주인이 박종호라면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계에서 박종호의 이름은 매우 무겁다. 정통 테너로, 한국이 베푼 최고의 엘리트 음악교육의 수혜자이다. “여기까지!”라고 선언이라도 하듯 손 한 번 흔들고 국내무대에서 사라졌던 그가 9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엔 CCM이 아닌 크로스오버 음반을 들고 나타났다. 타이틀곡의 촉감이 미묘하면서도 야릇하다. ‘당신만은 못 해요.’ 9년만에 컴백… 그리고 김종환과 만남 - 무려 9년입니다. 그 동안 뭘 하신 겁니까? “뉴욕에 있었어요. 메네스음악대학에서 대학원과정을 마쳤죠. 6월에 돌아왔습니다.” - 타이틀곡에 뭔가 사연이 있을 법 한데요? “말씀드리기엔 조금 긴데 …”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유학 중이던 박종호는 대구 지하철 참사사건을 접했다. ‘산다는 게 뭔가’하고 착잡해 하던 그에게 친구이자 음악프로듀서인 조셉 한이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노래를 좀 해봐라. 그게 진정한 CCM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래서 시작된 일이 무려 5년 8개월을 끌었다. 왜냐고? 곡이 안 나왔다. 그 동안 몇 명인가 이름깨나 있는 작곡가들이 달려들었지만 결국 곡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김종환을 만났다. ‘사랑을 위하여’, ‘존재의 이유’의 그 김종환이다. 초면인 두 남자가 마주 앉았다. 김종환은 한 시간 내내 아무 말도 없이 박종호의 말을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그리고 정확히 40분 후 박종호의 휴대폰이 울렸다. “가사 나왔습니다.” 5일 뒤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김종환이 자필로 갈겨 쓴 악보를 내밀었다. 멜로디는 안 보이고 가사만 눈에 들어왔다. 읽어 내려가다 4소절 째에서 그만 김종환이 보는 앞에서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말았다. 스물두 살에 결혼해 23년을 와이프랑 살면서 지내온 일들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눈앞을 주르륵 지나갔다. 아내와 ‘계급장 떼고’ 무섭게 싸웠던 장면이 불쑥 떠올랐다. ‘너를 사랑한다’고 수 없이 말하면서도 난 무엇을 하고 살았던가. 이 대목에서 감정이 폭발했다. 옆을 보니 조셉 한도 흐느끼고 있었다. “이거 제대로 걸리겠다”… 온몸에 소름이 - 노래를 들어봤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박종호류’와는 사뭇 다르던데요? “김종환 씨가 주문했죠. 성악적인 창법을 다 빼달라고. ‘이 노래는 가사만 들리게 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그게 도리어 어려웠다. 1주일을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했다. 자동차 안에서 가녹음된 CD를 듣고 있는데 옆에 있던 음악계 선배가 말했다. “이거, 혹시 김종환이가 썼나?” “ ‘어떻게 알았냐?’고 묻자 ‘김종환에게는 아주 독특한 정서와 중독성이 있다”면서 “그 사람 천재야. 김정호, 조용필 다음이 김종환”이라 했다. 마음을 고쳐먹고 혼신의 힘을 다해 불렀다. 완성될 즈음이 되니 몸에 소름이 돋았다. 중년의 부부들 모습이 노래에 겹쳐졌다. ‘이거 제대로 걸리겠다’싶었다. 녹음이 끝나자 김종환이 벌떡 일어서더니 인사를 건네왔다. “감사합니다. 정말 오랜 만에 좋은 곡이 나왔습니다.” “내 노래는 남편들의 반성문 ” - 우리나라 남편들이 좀 딱딱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까? “꽃 한 송이 말고 이 노래를 틀어 주세요. 이 노래는 남편들의 반성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사랑하세요. 어떻게 하냐구요? 결혼 전에 다 하던 거잖아요. 그때 그 사랑을 한번쯤 되돌아보고, 아름다웠던 기억을 떠올리세요. 서로 용서하지 못할 게 없습니다.” 박종호 씨는 수익금 일부를 민간구호단체인 S.F.I에 기부해 왔다. 에이즈에 걸린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 건립을 위해 애쓰고 있다. 2년 전에 탄자니아에 첫 고아원을 세웠고, 인도를 목표로 두 번째 모금운동을 하고 있다. “ 좋은소리로 사람들에게 행복 주고 싶어요” - 음악인으로서 계획이 있다면? “교수님들이 이런 말씀을 하셨죠. 세상에는 ‘성락가’와 ‘성학가’, 그리고 ‘성악가’가 있다고. 저는 제가 성악가인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닌 모양입니다. 소리가 너무 부족해요. 돈만 많고 일 안 해도 되면, 이태리 같은 곳에 가서 한 3년 실컷 소리나 지르고 왔으면 좋겠어요. 정말 좋은 소리로, 좋은 가사에 좋은 음악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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