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기자의音談패설]피아니스트김선욱의‘생얼매력’

입력 2009-01-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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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선욱(21)의 이름이 세상에 각인된 계기는 2006년 리즈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하면서부터. 결선에서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했던 그는 리즈콩쿠르사상 40년 만에 최연소이자 첫 동양인 우승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리즈콩쿠르는 1975년 정명훈이 공동 4위, 1984년 서주희가 2위, 1990년 백혜선이 5위를 했던 콩쿠르로 차이코프스키, 퀸 엘리자베스, 쇼팽 콩쿠르로 이어지는 소위 세계 3대 콩쿠르 못지않은 권위를 인정받는 대회이다. 김선욱은 이 대회에서 우승하기 전 해 전설적인 피아노 연주자 클라라 하스킬의 이름을 딴 클라라 하스킬 콩쿠르에서도 사상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현재 김선욱은 세계적인 공연기획사 아스코나스홀트 소속 뮤지션으로 영국 런던에 머물며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미 2011년까지 공연 스케줄로 다이어리가 빽빽한 그가 1월 31일 서울 공연을 앞두고 잠시 한국을 찾았다. 직접 만나 본 김선욱의 느낌은 ‘솔직함’과 ‘소탈함’, 그러나 음악인으로서의 자존심만큼은 차돌처럼 단단하게 뭉쳐진 사람? 질문을 받을 때마다 허공을 올려다보는 독특한 표정을 지어보였고, 답변은 포장지를 벗어 던진 알맹이 그대로였다. 음악가의, 그것도 클래식 음악가의 ‘쌩얼’을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기에, 인터뷰 내내 즐거웠다. 도대체 그가 어땠기에?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토종파 어려움 그런거 없어요” - 유학을 거치지 않은 ‘순수 국내파’로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되기까지는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솔직히 어려움이란 게, 뭐가 어려운 건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나만 국내파가 아니다. 손열음도 있다. 음악 교육적 여건의 경우 유럽에 비해 우리나라가 부족함이 없다고 본다.” 김선욱이 런던에 간 것은 불과 6개월 전.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해외로 진출하다 보니 아무래도 외로움이 가장 큰 적이다. 런던 외곽의 아파트를 한 채 얻어 혼자서 숙식을 해결한다. “초호화 아파트냐?”고 물으니 “무슨! 그냥 평범하고 작은 아파트인데 그래도 월세가 200만원이나 한다. 그나마 변두리라 그렇다”며 웃었다. ○나만의 음악해석? 멜로디를 듣지 않는다! -베토벤에 대한 애착이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베토벤은 껍질을 벗겨내면 낼수록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점점 커진다.” -그게 무슨 얘기인가? “베토벤의 음악은 악보에 있는 음표가 다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베토벤은 알려져 있듯 너무도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후기작품 같은 경우, 귀가 안 들리는 상태에서 그런 위대한 곡들을 썼다는 것 자체가 우리들에게 너무도 큰 의미를 남긴다. 베토벤은 한 번 쓴 곡을 고치고 또 고쳤다. 자필 악보를 보면 정말 대단하다. 그러니 계속 공부를 해도 부족할 뿐. 이런 건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라면서 그는 연신 테이블 위를 건반처럼 두드려댔다).” -흔히 ‘열정과 완벽한 테크닉을 지닌 피아니스트’라는 수사가 따라다닌다. 김선욱만의 ‘해석’이란 게 있을까? “악보에 없는 멜로디를 찾아내는 것! 나는 음악을 들을때 멜로디가 안 들린다. 반면 제일 낮은 음이 들린다. 연주도 비슷하다. 멜로디를 연주하는 오른손은 그냥 흘러가게 놔둔다. 즉, 남들이 멜로디를 중시할 때, 나는 다른 멜로디를 치는 것이다.” ○“의자 두개로 스트라이크존 만들고 야구” -스포츠광이라고 하던데? “하하! 어렸을 때는 LG트윈스 광팬이었다. 그 중에서도 이상훈 투수가 최고다. 왼손으로 뿌린 공이 우타자 무릎 쪽으로 쪽! 하고 빨려 들어가는 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 시절에는 오후에 학교 수업 빼먹고 형들이랑 야구를 하는 게 일과였다. 의자 두 개로 스트라이크존을 대신하고, 테니스공 한 다섯 개 사다놓고 하는 거다. 지금은 못 한다. 혹시 팔을 다칠까봐. 하하!” -이번 겨울은 김연아가 최고의 화제였다. “나도 팬이다. 나는 스포츠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김연아를 보면 정말 그렇다. 2007년 1월 1일에 김연아, 마술사 이은결 등과 함께 ‘새해를 빛낼 스타들’로 TV 출연을 했던 기억이 난다.” -김연아를 위해 프로그램 배경음악을 추천한다면? 이왕이면 자신이 연주한 곡으로? “음, 다소 격정적인 쪽은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 느린 곡이라면 쇼팽의 녹턴 C#마이너(유작)가 어떨까 싶다. (며칠 뒤 김선욱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을 추가해달라고 연락해 왔다)” -독자들에게 김선욱만의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힘들고 짜증이 날 때마다 ‘하면 뭐든지 될 수 있다’라고 믿었다. 어려움을 어려움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아무리 힘들어도 잠자리에 들 때는 ‘오늘 한 일이 내일을 위해 도움이 되겠지’하고 주문처럼 외웠다. 그리고 결국 도움이 되었다. 나는 낙천적인 사람이다. 그게 힘이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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