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선수의다른종목체험]‘역도’이배영,양궁에도전하다

입력 2009-03-2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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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선수촌에서만 12년. 무심결에 태릉방향으로 운전대를 돌릴 만큼 태릉은 제2의 집 같다. 강산도 변한다는 그 세월. 여러 종목 수많은 선수들을 만났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렸던 만큼, 타 종목 선수들에게 다가설만한 여유는 가지지 못했던 것 같다. 가끔 타 종목의 사정이 궁금했던 적은 있었다. 난 답답할 때면 태릉선수촌 안을 산책했다. 어떤 날은 양궁장까지 발길이 미치기도 했다. 호기심이 강한 나는 ‘저도 한 번 쏴 보면 안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마음뿐. 예의가 아니라고 여겼다. 멀찌감치 바라보기만 했던 양궁장. 태극마크를 반납하고서야 활을 잡아 볼 기회를 잡았다. 스포츠동아 창간 1주년 ‘이배영이 간다.’ 어떤 종목을 하겠냐는 물음에 난 주저 없이 양궁을 택했다. ○체육인의 정(情), 차 한 잔의 온기 인천광역시 서구에 위치한 현대제철 양궁단 연습장. 현대제철 장영술(49) 감독님이 반갑게 맞아 주셨다. 장 감독님은 1996애틀랜타올림픽부터 2008베이징올림픽까지, 한국양궁의 명 지도자로 이름을 떨친 분. 현대제철에는 이상현(28), 계동현(26), 김연철(25), 김재형(19), 임지완(19) 등 국가대표선수출신 선수들이 즐비하다. “(이)배영이가 태릉에 12년 있었다고? 난 14년 있었는데.” 장 감독님은 국가대표시절부터 안면이 있던 사이. 손수 우려낸 보이차(茶)를 건네셨다. 약간은 쌀쌀한 봄바람. 차의 온기 덕에, 살짝 긴장했던 몸이 사르르 풀렸다. “기본자세를 배우고, 실전기록도 한 번 측정해보자. 초등학생 기록과도 한 번 비교해 보는 거야.” 풀렸던 몸이 다시 굳었다. 초등학생 보다 기록이 안나오면 망신인데…. 옆에 있던 전영희 기자가 “나도 작년에 대표팀에서 가서 양궁체험을 했다”면서 “한 판 붙어보자”고 승부근성을 돋웠다. ○역도나 양궁이나 중요한 건 기본자세 노란 고무줄을 들고, 활을 당기는 자세부터 배웠다. 중학교시절, 역도에 입문하던 때가 떠올랐다. 바벨 옆에 디스크를 끼운 것은 훗날의 일. 바벨만을 들고서 인상, 용상의 기본자세를 익혔었다. 지루했던 시간이었지만 그 덕에 ‘역도의 교과서’라는 별명을 얻을 수 있었다. 빨리 사대에 서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이제, 나가보자.” 어느 정도 잡혔다고 판단하신 모양이다. 초보들이 쓴다는 나무활을 가지고 오셨다. 선수들이 쓰는 활에는 고유의 강도가 있다. 당기기 힘든 활에서 날아간 화살은 그 만큼 힘있게 날아간다. 바람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강한 활이 좋다. 하지만 자기근력의 범위를 넘어서는 활이라면, 낭패를 보기 십상. 46파운드의 강도라는 계동현의 활을 당겨보니 팔이 부들부들. “역시 (이)배영이가 대단하네. 그거 보통사람들은 당기지도 못하는데.” 칭찬에 어깨가 으쓱했지만, 선수용 활은 무리다. 첫 번째 활은 20파운드짜리. 장 감독님이 손수 화살 통을 허리춤에 차주셨다. 현을 퉁기면, 팔에 생채기가 날 수도 있기 때문에 암가드(Arm Guard)도 착용. 웃옷이 펄럭여 현에 닿는 것을 막기 위해 체스트 가드(Chest Guard)까지 하고 나니 제법 양궁선수의 태가 났다. ○단호하게 당겨라 표적에서 4m 떨어진 곳에서 쏜 생애 첫발은 6점. 차츰 화살의 강도를 높이고, 거리를 늘려갔다. 마음은 이미 노란 색 표적(9·10점)안에 이미 들어가 있는데, 화살은 빗나간다. “손가락 까딱까딱하지 하지 말라니까. 쏠까말까 망설여서 그런 거야. 네 타이밍이다 싶으면 바로 당겨.” 장 감독님의 호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맞출 수 있다는 확신이 없으니 활을 당기는 오른손 끝이 계속 떨렸다. 역도도 ‘왔다’ 싶으면 단 숨에 뽑아들어야 한다. 200kg을 드는 것이나 10점 과녁에 화살을 꽂는 일이나 과감함이 생명이다. 드디어 초등학생들이 쏜다는 20m 사선에 섰다. 화살도 28파운드짜리로 바꿨다. 1시간 남짓 연습을 했는데 벌써 어깨가 저려온다. 옆에서는 현대제철 선수들이 쉼 없이 화살을 당기고 있다. 불암산 크로스컨트리에서 역도선수들과 함께 사이좋게 후미그룹을 형성하던 그 때 그 선수들이 아니다. ○나는 체육인. 이겨도 웃지 못하고…. 전영희 기자와의 20m양궁대결. 3발씩 12엔드, 총36발이다. 상대가 쏘는 모습은 안 보는 편이 좋다. 상대가 잘 쏘면 더 잘 쏴야 한다는 부담이 나를 짓누른다. 상대가 못 쏘기를 바라면 내 집중력이 흐트러진다. 내 과녁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36발 중 2번의 10점, 1번의 X10(10점 마크 중에서도 한 가운데)을 기록한 끝에 210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한 발 당 약 6점씩을 쏜 셈. 2008년 5월 열린 제19회 전국초등학교양궁대회를 기준으로 하면 참가자 136명 가운데 133번째 기록이다. 139점에 그친 전영희 기자는 “활이 안 좋다”고 투정을 부렸지만, 장영술 감독님은 같은 활로도 연신 X10. 명색이 운동선수인지라, 이겨봐야 본전이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기뻤다. 재밌는 점은 둘 다 후반으로 갈수록 기록이 저조했다는 것. 장 감독님은 “전영희 기자는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지만, (이)배영이 너는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이라며 다그쳤다. 점수차가 벌어지자 조금 나태해 졌던 것도 사실. 역시 귀신같으시다. ○“진지함 덕에 빨리 배운 거야.”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쏘는 거리(70m)까지도 활을 날려 보낼 수 있을까. 마지막 도전. 46파운드짜리 활을 빌렸다. 첫 발은 50m도 못 가 고꾸라졌다. 옆에서 “아령을 던지면 그곳까지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농담을 걸었다. 오기가 더 생겼다. 정말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는 없다. 정확히 10번째 시도 만에 2점표적에 정확히 화살을 꽂았다. 이상현은 “자세도 좋고, 몇 년간 배운 동호인보다 낫다”고 했다. 계동현도 “제 아무리 운동신경이 좋은 사람이라도 1주일 이상은 연습해야 70m표적을 맞출 수 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느 덧 서산에 해가 뉘엿뉘엿. 전영희 기자가 장영술 감독님께 “이배영 선수는 힘도 세고 운동신경이 좋아서 양궁을 빨리 배우는 것이죠”라고 물었다. 장 감독님은 “진지함 덕에 빨리 배운 것”이라고 하셨다. 뜨거워진 내 속을 들켜버린 느낌이었다. 역시 어느 운동을 하나 쉬운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양궁은 맞춰야 한다는 강박관념과의 싸움이 힘들었다. 조금 장난스럽게 이야기 하자면, 역도대표팀에서는 은퇴하기로 했는데 런던올림픽에 또 한 번 나가고 싶을까봐 걱정이다. 올림픽 마라톤 2연패 이후 장애인올림픽 ‘양궁’에 출전했던 비킬라 아베베처럼. 장 감독님은 훈련이 끝난 후 수년 간 선수들의 기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한 프로그램을 보여주셨다. 현대 스포츠는 과학적 분석이 성패를 가른다. 올림픽 때마다 금메달을 휩쓰는 한국양궁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역도에서도 훈련의 성과들을 축적시킬 수 있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다. 이배영(아산시청역도선수) 2004아테네올림픽 역도 은메달리스트 정리|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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