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봉의인사이드볼파크]‘무한잠재력’채태인,거포의꿈이보인다

입력 2009-08-12 07: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채태인. 스포츠동아DB

“처음 삼성 유니폼을 입을 때 저 자신한테 말했습니다. 5년안에 친구인 롯데 이대호와 한화 김태균을 따라잡는다.”

삼성의 신흥거포 채태인(사진)의 방망이가 불을 뿜고 있다. 11일 현재 타율 0.303, 15홈런, 55타점. 공격 전부문에서 팀내 1,2위를 다투고 있다. 타자전향 3년만에 거둔 성적이기에 그저 놀랍기만 하다.

팀내에서는 그를 천재라고 부른다.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아직 저도 저를 잘 모르겠습니다.”채태인에게 자신을 칭찬하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는 아직도 스스로를 약점이 많은 타자라고 낮춘다.

채태인의 아이디는 메이저리그의 전설적 투수 ‘샌디 쿠팩스’다. 부산상고 2학년 때 황금사자기에서 5경기연속 완투를 하며 눈길을 끌었던 채태인의 꿈은 늘 메이저리그에 있었다.당시 지금보다 30kg이나 가벼운 187cm,65kg의 깡마른 체격이었지만 145km의 빠른 공을 던졌다. 보스턴에서 욕심을 낼 만한 선수였다. 그러나 미국은 채태인의 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01년 어깨수술을 했고 보스턴은 2002년 그를 임의탈퇴로 묶었다.

야구를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단 군복무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에 2002년 12월 귀국해 2년간 공익근무를 했다. 2005년 8월,보스턴의 극동담당 스카우트 존 디블을 만나기 위해 호주로 갔다.

디블은 뜻밖의 제안을 했다. “투수는 안되겠고 방망이를 한번 쳐 봐라.너는 방망이도 소질이 있지 않느냐?” “한국에서 야구를 하고 싶습니다. 제발 임의탈퇴에서 풀어주십시요. ”

보스턴이 그를 방출했지만 채태인은 한국에서 야구를 할 수 없었다. 해외진출선수는 국내에 와도 2년간 뛸 수 없다는 조항이 그를 가로막았다.

2006년 무작정 웨이트트레이닝에 전념했다. 일단 힘이 있어야 야구를 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2007년 해외진출선수 특별지명은 하늘이 그에게 내린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고교시절이후 6년 동안 방망이를 잡아본 적이 없는 채태인에게 타자수업은 고행의 연속이었다.

“2007년 2군에서 첫경기를 하는데 KIA 곽정철이 초구에 151km를 던졌어요. 솔직히 내가 타자로 성공할 수 있을까 앞이 캄캄하더라구요.”

그러나 타자 채태인의 능력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나타났다. 사상 처음으로 열린 2007년 퓨처스게임에서 홈런 1개 포함, 3안타를 치며 초대 MVP를 차지했다. 지난해에는 용병 크루즈가 방출되면서 1루수로 뛸 수 있는 행운이 따랐다. 홈런 10개를 때렸고 포스트시즌에서도 맹활약 했다. 채태인은 올해 오른발을 높이 들고 타격을 한다. 타이밍도 잘 맞고 장점인 파워를 살리는데도 큰 도움이 된다. 나가시마 타격코치의 도움으로 타자로 전향한지 3년만에 가장 몸에 맞는 폼을 찾았다.

“사실 스프링 캠프 때 세운 목표가 20홈런, 80타점인데 초반에 부진해서 말도 못했습니다. 열심히 해서 꼭 이뤄보고 싶습니다.”채태인의 매력은 무궁무궁한 그의 잠재력과 가능성, 그리고 도전하는 자세다. 그의 놀라운 성장세에 친구 이대호, 김태균과의 거리차가 빠르게 좁혀지는 느낌이다.

야구해설가

꿈이 있는 사람은 걱정이 없다. 실패와 낙심으로 힘들어도 꿈이 있어 이겨낼 수 있다. 선수들의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