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아침편지]땅콩죽에감기나은며느리시어머니노릇뿌듯하네요

입력 2009-08-28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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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얼마 전 며느리가 감기 몸살로 된통 앓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들은 걱정이 됐는지 제게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서, 바쁜 일이 없으면 며느리 대신 유치원에 다녀오는 애들 마중 좀 나가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제가 바쁜 일이 어디 있겠냐고 하면서 아들집으로 갔습니다.

집 앞에 도착해서 한참이나 벨을 눌러도 기척도 없고… 저는 계속 기다려야만 했어요.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전화를 했더니, 한참 만에 받아서 겨우 문을 열어주더군요. 안 그래도 몸이 약한 며느린데, 고새 얼굴이 얼마나 상했는지, 안쓰러웠습니다.

집 안에 들어서자, 식탁 위에는 누가 끓였는지 흰죽이 담긴 냄비가 덩그러니 놓여 있고, 여기저기 아이들 장난감에, 아침에 아들이 출근하면서 벗어놓은 옷가지가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저는 며느리에게 제 신경은 쓰지 말고 얼른 들어가서 쉬라고 했죠 그제야 마지못해 안방으로 들어가면서 작은 목소리로 “어머니 죄송합니다.”라고 말하더군요. 대충 집안 정리를 하고, 시간이 돼서 우리 두 공주님 마중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차에서 내리는 요 녀석들은 엄마 얼굴이 안보여서 그런지 웃음도 없이 힘없이 내려와서는 두리번거리는데, 한참 후에 저를 발견하고는 “야∼ 우리 할머니다∼”하면서 제게 덥석 안기더군요.

“엄마는 어디 갔어요?”라고 물으면서도 제 볼에 뽀뽀세례를 퍼부으니, 아픈 며느리에겐 미안한 소리지만 저더러 이 행복을 맛보라고 귀한 시간을 준 것 같아 고맙다는 생각도 들었죠.

아이들을 데리고 돌아온 저는 오후 내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어린것들과 놀아주기 바빴어요. 그렇다 보니 누워있는 며느리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지 못해 미안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며느리를 위해 불린 찹쌀에다가 땅콩과 참깨를 갈아 넣고, 땅콩죽을 한 냄비 끓여서 연락도 없이 아들집에 갔지요. 며느리는 한 입 떠서 입에 넣더니 “어머, 어머니, 이거 땅콩죽이네요!”하면서 놀라는 겁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들이 며느리가 땅콩죽 좋아하는 건 어떻게 알고 끓여왔냐고 하는데, 안 먹는다고 하던 죽을 한 그릇 싹싹 비워서 다 먹고 더 덜어서 먹는걸 보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날이 토요일이라 며느리에게 친정에 가서 좀 쉬다 오라고 하고 손녀들은 제가 봐주기로 했죠. 저녁에 손녀들을 데리러 온 아들이 그러는데 제가 가고 나서 며느리가 많이 울었다는 겁니다. 감동을 받아서 그런 것 같다고 하는데, 아들은 자기들 때문에 몇 번씩 왔다 갔다 하게하고, 고생시켜서 미안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내 며느리가 병이 났는데, 시어머니인 내가 챙겨주고 보살펴 줘야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도 내 손으로 뭔가 해 줄 수 있어서 마음이 놓인다고 했죠. 제 땅콩죽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 이후로 며느리는 금세 기운을 차리고 툭툭 털고 일어났어요. 이번 일을 통해 며느리와 좀 더 가까워 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From. 김혜주|경북 경산시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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