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아침편지]휴가비내미는사위와딸…이제철들었나봐요

입력 2009-08-22 07:30:00
카카오톡 공유하기
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매주 토요일이면 우리 부부는 얼른 식당을 정리하고 일찌감치 퇴근을 합니다. 막 정리를 하고 나가려는데 휴대전화가 울리는 게 아니겠어요? 누군가 하고 봤더니, 사위의 전화였습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서 받았더니, 어디 있냐고 묻더라구요. 이제 가게에서 나왔다고 하니까, 저희 부부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됐는데 아직인 것 같아서 궁금해서 전화했다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 사위가 좀 무뚝뚝해서 평소에도 연락을 잘 안하거든요. 그런데 이런 사위가 갑자기 연락을 하니까 괜히 ‘오늘 저녁에 맛있는 거라도 사주려고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얼른 들어가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남편과 제가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위와 딸이 왔습니다. 대뜸 사위가 거실에 앉아있는 제게 하얀 봉투 하나를 내밀면서 “장모님, 얼마 안 돼지만 이번 여름 휴가비로 쓰세요” 이러는게 아니겠어요?

“아이고∼ 이게 웬 횡재야? 살다보니 사위한테 휴가비도 받고, 이렇게 좋은 일도 있네∼ 아무튼 고마워”하고 봉투를 만져봤는데, 이게 생각보다 제법 두툼했습니다.

인사 차 “뭘 이렇게 많이 넣었어?”하면서 돈을 세어 봤습니다. 거금 30만원이 얌전히 들어있는 겁니다. 액수를 떠나서 단돈 5만원 만 넣어줘도 좋은데, 30만원이라니.

아무튼 그 돈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남편에게 반씩 나눠 갖는 게 어떻겠냐며 반을 줬습니다. 남편은 돈을 받자마자 “아니, 니들은 무슨 돈이 있다고 휴가비를 다 주고 그러냐? 니들 살림에 보태 쓰지” 이러면서 다시 딸에게 건네주는 겁니다. 그러자 딸이 “아빠, 저랑 남편이 드리는 휴가비니까, 필요한 데 요긴하게 쓰세요”하면서 안 받았죠.

그래서 제가 중간에서 “그렇게 서로 받기 싫으면 나한테나 주고 둘 다 나중에 딴소리 하지들 말어”라면서 슬그머니 손을 내밀었습니다. 남편은 그제서야 다시 돈을 챙기더군요.

다음 날 남편은 제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이게 뭐에요?” 그러자 남편이 “응, 10만원이야. 나는 5만원이면 충분하니까 딸한테 이 돈 보태서 사돈 어른들 용돈 챙겨드리라고 해. 알았지?” 여기서 또 한소리 했다간 되려 남편에게 잔소리만 들을 것 같아서 일단 알았다며 돈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딸에게는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걱정 안 해도, 친정에 하면 시댁에는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거든요. 하여간 그래서 다음 날 아침 사위에게 ‘고맙네, 휴가비 잘 쓸게. 그리고 먹고 싶은 거 있으면 연락해. 내가 다 해줄게’ 하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랬더니 우리 사위, 제가 해주는 음식은 전부 맛있다면서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저희 딸 결혼한 지 이제 1년 조금 넘었습니다. 처음엔 사위랑 얼마나 싸우는지 결혼했는데도 철이 덜 든 것 같아 걱정도 많았답니다. 그런데 이젠 우리 생각해서 휴가비도 주고 철 좀 든 것 같지 않나요?

서울시 성동구|이길례

행복한 아침, 왕영은 이상우입니다




뉴스스탠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