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준 “여우같은 아내를 위해 뛰고 또 뛴다”

입력 2010-01-08 16: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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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팀 노병준.

그는 첫날(5일) 고지대 훈련을 끝낸 뒤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거친 숨소리를 냈다. “호흡이 터지지 않네요. 나이가 있으니 피곤하고요.”

표정은 진지했다. “하지만 견뎌 내야죠. 후배들하고 경쟁에서 처지면 안 되잖아요.”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이 묻어났다.

전지훈련 기간 동안 아내와 매일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아내의 격려가 큰 힘이 되기 때문이다. 문자를 통해 아이들의 일상에 대한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 기운이 난다고 한다.

가족의 힘으로 힘겨운 고지대 훈련을 버틸 수 있다며 환하게 웃는다.

2009년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한 포항 스틸러스 공격수 노병준(31). 그는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붓고 있다.

루스텐버그 전훈 동안 가장 눈에 띌 정도로 열심히 했다. 진지한 태도나 열정은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 자신의 미니 홈피에 ‘또 하나의 도전이다. 도전하는 자만이 성공을 이룬다. 끝까지 도전할거다’고 쓴 것처럼 그의 의지는 결연하다.

비록 후배들과의 경쟁이지만 뒤질 생각은 추호도 없다. 생애 가장 큰 소원인 월드컵 출전의 기회가 왔기 때문이다. 가족은 이런 그를 버티게 하는 든든한 후원자라고 말한다. “힘들 때 나만 보고 있는 아이들과 아내를 보면서 무너지면 안 된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었다.”

요즘은 범위가 더 커졌다. 생애 첫 월드컵 출전의 희망이 싹 텄기 때문인지 가족은 물론이고 부모나 친척, 주위 모두의 희망이 되고 있다.

노병준은 “모두가 성원해주기 때문에 부담도 되긴 하지만 더욱 열심히 해 반드시 월드컵 엔트리에 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노병준은 지난 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2002년 전남 유니폼을 입고 K리그에 데뷔한 뒤 딱 100경기를 채우고 2006년 오스트리아 그라츠AK로 이적했다. 떠날 당시 전남의 사령탑이 허정무 감독이었다. 6경기에 출전, 2골을 넣었으나 팀의 파산으로 14개월 동안 뛸 팀을 찾지 못한 채 방황했다.

천신만고 끝에 2008년 포항에 입단한 뒤 재기에 성공했고, 지난해 컵대회 우승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국제축구연맹(FIFA) 클럽월드컵 3위를 이끌며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그리고 2000년 6월 LG컵(이란)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이후 거의 10년 만에 태극마크를 다시 달았다.

인생에서 쓴 맛을 본 뒤 아픔을 곱씹으며 재기에 성공한 노병준. 그의 불굴의 의지가 월드컵이라는 축구 인생 최대의 도전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요하네스버그(남아공) | 최현길 기자 choihg2@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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