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륜 스캔들로 곤욕을 치른 첼시의 존 테리 대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특급 센터백 리오 퍼디낸드가 새 잉글랜드 대표팀 주장으로 임명됐다. 선수로서의 자질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의견은 거의 없을 테지만 퍼디낸드 역시 다혈질 성격으로 각종 사건 사고들을 몰고 다녔던지라 그의 주장 임명에 대해 이런 저런 말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 세계 정상급 센터백, 매너는 글쎄
퍼디낸드는 수비수가 갖춰야 할 자질을 모두 갖춘 세계 정상급 센터백으로 평가 받는다. 2000년 웨스트햄에서 리즈 유나이티드로 이적할 당시 1800만 파운드의 이적료를 기록하며 당시 수비수로서는 최고액을 기록했다. 그는 리즈 주장 완장을 차고 팀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에 까지 올려놓는 맹활약을 보여줬다.
2002년 리즈에서 맨유로 이적할 당시에도 3000만 파운드라는 수비수로서는 경이적인 이적료를 기록하며 자신이 세웠던 최고액을 직접 경신했다.
그의 가치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그는 사건 사고를 몰고 다니는 악동 플레이어 중 한명이다.
지난 달 23일 헐 시티와의 경기에서 상대 공격수 크레이그 페이건을 팔꿈치로 가격한 이유로 축구협회(FA)로부터 3경기 출장 정지를 받았다. 이에 대해 퍼거슨 감독과 퍼디낸드는 지난 9월 리버풀이 리즈와 칼링컵에서 맞붙었을 당시 리버풀의 마스체라노가 상대편에 비슷한 파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징계가 없었다는 이유를 들며 언짢아했고 항소를 했다.
하지만 FA는 “항의가 경솔했다”며 괘씸죄로 한 경기 추가 출장 정지 처분을 내렸다. 총 4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은 퍼디낸드는 아스널, 포츠머스, 애스턴 빌라, 에버턴 전에 출장할 수 없게 됐다.
오랜 부상에서 돌아와 단 두 경기를 치르고 다시 네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황에 처한 퍼디낸드 덕분에 맨유 수비진에는 초비상이 걸렸지만 맨유는 그 없이도 아스널전과 포츠머스전에서 대승을 거둬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퍼디낸드는 지난 달 27일 맨시티와의 칼링컵 준결승에서도 테베스의 얼굴을 팔꿈치로 가격해 테베스가 한동안 경기장에 쓰러져 있었다. 후반전에는 라파엘에게 거친 태클을 걸었던 테베스에게 싸울 기세로 달려들다 심판에게 저지를 당하기도 했었다.
경기장 밖에서도 사건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1998프랑스월드컵 때는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당시 글렌 호들 감독의 최종 엔트리에 제외되는 아픔을 겪었다. 하지만 2002한일월드컵, 2006독일월드컵에서는 잉글랜드 대표팀의 수비를 지휘하며 주전으로 활약했다.
그는 교통 법규를 어겨 네 차례나 면허를 정지당했던 거리의 무법자였다.
2004년에는 FA의 약물검사에 응하지 않아 8개월 출장정지 처분을 받고 유로 2004에도 출전하지 못한 끔찍한 경험도 있다. 그는 “테스트에 일부러 응하지 않은 게 아니라 단지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고 털어놨지만 이 같은 믿을 수 없는 이유에 모든 이들은 어이없어 했다.
하지만 복귀 후, 2006~2007 맨유의 트레블 달성과 2007~2008 더블 달성에 주축 멤버로 활약하며 큰 공헌을 했고 2008년 5월 챔스리그 결승전에서 주장으로 활약, 우승 트로피를 직접 들어올렸다.
● 말 많았던 잉글랜드 주장 임명
2008년 잉글랜드 대표팀의 카펠로 감독은 주장으로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음주운전 파문, 약물검사 거부 파동 등의 이유로 퍼디낸드의 주장 임명을 완강히 반대하던 일부의 의견을 수렴해 존 테리를 주장으로, 퍼디낸드를 부 주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카펠로 감독은 최근 대표팀 동료 웨인 브릿지의 전 동거녀 바네사 페론셀과의 불륜으로 비판에 휩싸인 존 테리의 주장직을 박탈했다. 항간에서는 경솔하고 매너가 없는 퍼디낸드의 태도를 문제 삼고 대표팀 주장으로 적합하지 않는다는 여론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긴 부상으로 인해 떨어진 경기 감각도 반대의 이유 중 하나로 떠올랐다.
더 타임즈의 축구 전문가 올리버 케이는 “퍼디낸드가 최근 2년간 많은 부상으로 컨디션이 좋지 않다. 2010남아공월드컵에서 모든 경기를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퍼디낸드의 주장 임명에 반대 의견을 던졌다.
하지만 카펠로 감독은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중요한 것은 그 실수를 바로잡는 것”이라며 퍼디낸드를 두둔했다. 퍼거슨 감독 역시 “우리 팀 선수 중 한 명이 잉글랜드 대표팀의 주장을 맡으면 맨유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이전에도 게리 네빌, 브라이언 롭슨, 바비 찰튼 같은 선수들이 많은 경기에서 대표팀 주장 완장을 차고 멋진 활약을 보여줬다.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며 퍼디낸드의 주장 임명을 환영했다.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들로 비판의 대상이었지만 복귀 후에는 언제나 최고의 경기력을 보여주며 자신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웠던 퍼디낸드. 그가 이번 월드컵에서도 잉글랜드 주장으로서 멋진 활약을 보여주며 그간의 반대 의견들을 잠재울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맨체스터(영국) | 전지혜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