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이 EPL] “퍼거슨, 이젠 입 좀 여시죠!”

입력 2010-03-16 15: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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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퍼거슨. 스포츠동아DB

언론과 인터뷰 거부…더이상 못 해
프리미어리그를 취재하면서 가장 인터뷰하기 힘든 사람은 누굴까.

한국 취재진들은 물론이거니와 영국 취재진들도 두말없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을 꼽는다. 공영방송 BBC와의 인터뷰도 거부하는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퍼거슨을 기자들이 개인적으로 만나 말을 끌어내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통과시킨 새 규정 때문에 다음 시즌부터 퍼거슨은 ‘울며 겨자 먹기’로 언론과의 인터뷰에 응해야할 처지다. 그간 불만이 가득했던 기자들의 환호성이 들리는 듯 하다.


●6년 간 BBC 인터뷰 거절한 이유

퍼거슨은 2004년부터 현재까지 BBC와의 인터뷰를 거절해왔다.

이유는 나름대로 정당하다. 2004년 BBC는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다큐멘터리에서 퍼거슨과 당시 이적시장의 에이전트로 활동했던 아들 제이슨 퍼거슨의 이야기를 내보내며 퍼거슨의 심기를 건드렸다. 제이슨이 단순한 감독을 넘어선 프리미어리그의 최고 권위자 퍼거슨의 입김을 등에 업고 이적시장에서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방송 이후 이와 관련해 공식적으로 밝혀진 제이슨의 불법행위는 없었다. 뿔난 퍼거슨은 “BBC가 내보낸 나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사실과 무관하다. 아들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다. 사과의 방법조차 모르는 거만하기 그지없는 방송사”라며 BBC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퍼거슨은 “특대형 방송사에 든든한 보험까지 든 BBC를 고소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어차피 그들은 상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이유였다. 대신 그가 선택한 복수의 방법은 인터뷰 거절이었다.

“앞으로 BBC와 인터뷰를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 선언한 그는 현재까지 약속을 잘 지켜내고 있다.


●이유 없는 기자회견 불참

퍼거슨이 거부하는 것은 BBC와의 인터뷰 뿐 만이 아니다.

그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도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홈 팀이건 어웨이 팀이건 모든 감독들이 경기를 마치고 10~20분 정도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감안하면 퍼거슨의 행동은 납득하기 힘들다.

이에 대해 유력지 인디펜턴트의 닉 헤리스 기자는 “경기 후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당연한 감독의 의무다. 하지만 퍼거슨은 이를 거부한다. 이는 참 아이러니 한 일”이라고 쓴 소리를 내뱉기도 했다.

경기 후 그의 코멘트를 들을 수 있는 길은 맨유가 운영하는 자체 방송사 맨유TV가 유일하다. TV로만 만날 수 있는 그에게 질문을 던질 수도 없다. 취재 기자의 접근권이 그 때 만큼은 쓸모가 없다. 그런 행동이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기자들 사이에는 지난 7년간이나 경기 후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는 그를 회견장으로 불러내거나 따로 인터뷰 요청을 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나마 챔피언스리그가 열리는 주에 매치 프리뷰 기자회견을 열어주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퍼거슨 감독의 자유는 끝

지난해 11월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이 통과시킨 새 규정은 그간 퍼거슨의 인터뷰 거절에 대해 볼멘소리를 해오던 기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줬다.

‘감독들은 경기를 마친 후 정당한 권리를 지닌 언론과 인터뷰를 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규정이 제정된 프리미어리그 보드 미팅에 참석했던 맨유의 데이비드 길 사장은 “새 규정을 수용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정당한 권리를 지닌 언론’에는 물론 BBC가 포함된다. 따라서 퍼거슨은 다음 시즌부터는 지난 6년 동안이나 복수 차원으로 거절해왔던 BBC의 인터뷰 요청에 응해야 한다.

퍼거슨은 신문 기사들이 참석하는 기자회견도 거절할 수 없다. 규정을 따르지 않고 인터뷰를 거절하는 감독들은 각 상황에 맞는 징계를 받기 때문이다. 퍼거슨은 새로운 규정에 거부 반응을 보일 듯 하다. 하지만 다음 시즌부터 보다 다양한 인터뷰를 전할 수 있게 된 기자들과 그것을 전해들을 수 있는 시청자들에게는 이보다 더한 희소식은 없을 것 같다.

맨체스터(영국) | 전지혜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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