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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시장의 격언 중 ‘예정된 악재는 더 이상 악재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죠. 주식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합니다. 다수의 인간 욕망이 혼재되고 충돌하는 측면에서 주식과 야구는 속성이 흡사합니다. 그 관점에서 김성근 감독과 한화 한대화 감독 중 누가 더 번민할까란 상상을 해봅니다. 한대화 감독이야 설혹 꼴찌를 하더라도 누가 돌을 던지겠습니까마는 SK는 우승부터 4강 탈락까지 모든 시나리오가 다 열려 있는 팀이니까요. 게다가 제도적 통제 불능(스트라이크존 확대, 무승부 규정, 덕아웃 전자기기 반입금지)도 늘어났죠. 변수는 갈수록 느는데 통제 가능한 영향력은 한계에 있으니 김 감독의 출구는 필연적으로 하나로 쏠리겠죠. 야구 자체에 더욱 몰입하는 것. 이 탓일까요, 요즘 SK에서 ‘1호 동지’의 동선은 운전기사도 모른다는 말이 나옵니다. 7일엔 불시에 송도 2군경기를 시찰하러 나타났는데 현장코치들조차도 사후에 알았을 정도로 잠행입니다. 분위기가 이러니 SK 덕아웃은 화성만큼 황량합니다.
#김 감독에 비교적 중립적인 SK 어느 직원의 비유가 생각납니다. “알고 보면 김성근 감독은 비주류의 혁명가다. 마무리 투수 도입이나 주루 플레이 등 수많은 혁신이 그로부터 시작됐다.” 그 비주류의 혁명가는 어느덧 중원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제자만 넷이 감독으로 포진하고 있으니 왕(王)감독입니다. 그러나 지금 김 감독이 처한 상황은 ‘시지프스의 돌 굴리기’를 연상시킵니다. 그토록 숱하게 이겼어도 워털루 전쟁 한번의 패배로 모든 걸 잃은 나폴레옹처럼. 주류진영에 속한 적 없는 그는 중원을 점령했어도 동맹을 통한 진지구축보단 고독하게 끝까지 사방의 적을 제압하는 노선을 택한 셈이지요. 이런 구도는 결국 한번의 실패로 모든 걸 잃을 수 있다는 공포심을 자극하기에 역경에 몰릴수록 김 감독을 더 비장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이런 김 감독에게 ‘이미 명장이니 승패에 초탈해져도 괜찮지 않은가’란 얘기는 사치일 수도 있습니다. 하긴, 그렇게 변하면 김성근 감독이 아니겠죠.
gatzb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