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로 더 많이 알려진 배우 성병숙이 연극 ‘내가 가장 예뻤을 때’로 잔잔한 인기를 얻고 있다.
“무대 인생 어느새 30년 훌쩍”
‘내가 가장…’ 엄마역 열연 중
“숨어서 하고 있어요, 하하!”
성우이자 연극배우인 성병숙(55)는 요즘 ‘내가 가장 예뻤을 때’라는 작품에서 시집 안 간 딸과 티격태격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을 쌓아 가는 엄마 역으로 열연 중이다. ‘친정엄마’, ‘여보, 고마워’, 영화 ‘애자’ 등에서 주로 최루성 연기를 주로 했던 그녀는 이번에는 밝고 유쾌한,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 굳게 믿는 늙은 엄마를 맡았다. 거창국제연극제, 밀양여름축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지만 공연팀 경험이 많지 않아 홍보가 덜 됐다며 이를 ‘숨어서 하고 있다’라고 표현했다. 성병숙은 연극 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성우로 더 친숙하다. ‘아차부인 재치부인’의 아차부인 등 라디오 드라마, 각종 외화 더빙에서 활약했다. 그녀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애니메이션 더빙. 지금도 올드 팬들의 기억에 생생한 추억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이상한 나라의 폴’의 얄미운 버섯돌이, 스누피가 나오는 ‘찰리브라운’의 피아노 치는 똘똘이, ‘세일러문’의 마녀 에스메랄다가 모두 그녀의 목소리였다.
사실 성병숙은 방송 데뷔가 ‘살짜기 웃어예’라는 한국 최초의 개그 프로그램이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학 3학년 때 방송사 연출자였던 대학 선배의 권유로 출연했다. 당시 이 프로그램에는 전유성, 김병조, 임성훈, 최미나, 강석 등이 출연하고 있었다. 이후 연기자로 자신의 진로를 정해 활동한 경력이 어느덧 30년을 훌쩍 넘었다. “이제 연기에 ‘도’가 좀 트셨겠다”하니 “절대 아님”이라는 강한 부정이 되돌아왔다.
“왜 선배들이 할수록 겁난다는 소리를 했는지 알겠어요. 공연 올라가기 전 열흘이 제일 힘들고 괴롭죠. 그 동안 연습한 거 다 무너지는 것 같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딱 ‘첫 공(첫 공연)’ 끝나면 살 것 같죠. 정리가 되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가 딱 서죠.”
그래서 그 ‘첫 공’만 보러 가는 관객이 있다. 낚시로 치면 ‘잡아채는 맛’이 있기 때문. 배우들의 긴장이 관중석까지 팍팍 느껴진다. 배우들도 ‘첫공’에서는 실수를 하지 않는다. 문제는 두 번째 공연. 누군가 꼭 실수를 한다. 이것도 배우들의 징크스라면 징크스. ‘조용하고 튀지 않는 성격’이라고 스스로 말하지만 성병숙의 인생은 조용하고 평탄하지 못했다. 첫 결혼의 이른 파경, 아버지의 뇌졸증,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어머니. 12년 만에 재혼했지만 IMF로 남편 사업이 100억원의 부도를 내며 또 다시 이혼의 아픔을 겪었다.
“세상에 벌레가 없는 나무는 없어요. 하지만 나무가 건강하면 벌레는 문제가 안 된다고 하죠. 자기 스스로 잘 버티고 있으면 자식문제, 남편 문제, 경제적인 문제가 있더라도 결국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