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2010 V리그 여자부 챔피언 KT&G 박삼용 감독과 주장 김사니가 배구공을 들고 오누이 같은 다정 포즈를 취하고 있다.
KT&G박삼용 감독-김사니 주장 더블 데이트
KT&G는 2006~2007시즌 3승21패(최하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든 뒤 2007년 4월 박삼용(42) 감독을 새로 영입했다. 그리고 한 달 뒤 자유계약선수(FA)로 풀린 세터 김사니(29)를 데려왔다.이른바 ‘꼴찌 감독’과 ‘만년 2인자’의 만남이었다.
박 감독은 전임 GS칼텍스 사령탑 시절 7승47패의 초라한 성적으로 중도에 지휘봉을 놨다. 김사니는 한국배구 최고 세터로 군림하면서도 도로공사에서 준우승만 4차례였다. 그러나 3년 후 ‘꼴찌 감독’과 ‘만년 2인자’는 팀 역사를 새로 썼다. 짜릿한 환희와 감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우승 다음날(18일),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대전 신탄진 KT&G 체육관에서 박 감독과 ‘주장’ 김사니를 만났다.
●아픈 만큼 성숙
둘 모두 힘든 시기를 거치며 한 뼘 성장했고 KT&G에 와서 꽃을 피웠다.
박 감독은 원칙주의자다.
본래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지만 틀을 벗어나면 누구도 용납하지 못했다. 선수가 선수 본연의 태도를 벗어나면 그 꼴을 못 봤다.
그러나 이제는 그 원칙과 틀의 기준이 유연해졌다.
“선수들이 제 생각과 다르면 왜 그런지 고민을 꼭 해봅니다. 대화를 하다보면 답이 나와요. 예전에는 제 의지대로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제가 하나를 양보하면 선수들은 둘을 양보해요.”
김사니는 ‘표독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센 승부욕 때문이다.
“예전에는 너무 욕심도 많았고…. 후배를 못살게 군적도 있었어요. 박 감독님도 처음에 이를 염려하셨죠. 그런데 이 팀에 와서 내 패턴이 잘못된 게 많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2의 김사니로 거듭나려면 나쁜 것들을 없애야겠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가식처럼 보였던 행동(예를 들면 동료가 어이없는 실수를 해 열 받아 죽겠는데도 웃으며 힘내자고 하는 등)이 이제는 제 본래 모습이 된 것 같아요.”
2009-2010V리그 여자부 챔피언 KT&G 박삼용 감독이 신탄 KT&G 스포츠센터 코트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마음으로 늘 외친 우승
박 감독은 작년까지는 시즌 전 “일단 플레이오프가 목표다”고 말해왔다. 일단 PO에 올라야 우승을 노릴 수 있으니까.
그러나 두 시즌 연속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고도 PO에서 3위에 패해 챔프전 진출이 좌절되자 바뀌었다. 올 시즌 앞두고는 당당히 “우승이 목표다”고 밝혔다. 강호경 수석코치와 김사니의 공(?)이 컸다. “감독님, 이제는 우승이 목표라고 말 하셔야 돼요. 그래야 저희도 더 분발하죠!!!”
마음속에 우승을 품자 버릇이 하나 생겼다. 올 시즌 내내 시간 날 때마다 우승감독상을 받은 뒤 어떤 이야기를 할지 상상하며 수첩에 적었다. 다음날 보면서 지울 건 지우고 추가할 건 더 하고….
나태해지는 마음을 다잡기 위한 일종의 자극책이었다.
올해 우승감독상 시상식에서 어떤 소감을 말할지 궁금할 따름이다.
김사니도 동료들과 함께 미래(未來)일기를 써 왔다.
‘우승을 해서 최우수 리베로가 될 것이다(임명옥)’ ‘우승을 해서 최우수 세터가 될 것이다(김사니)’ 맏언니 장소연(36)은 조금 달랐다. ‘반드시 우승을 해서 (김)사니가 최우수선수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
우승은 했지마 챔프전 MVP는 몬타뇨의 차지.
“제가 MVP 못 탄 거 빼고는 다 지켜졌다고 (장)소연 언니가 아쉬워했어요. 저요? 섭섭하긴요. 당연히 몬타뇨가 타는 게 맞죠.”
●장소연이 있기에
둘과 우승 이야기를 하다보니 공통분모 중 하나가 바로 장소연이었다.
올 시즌 그녀가 신인 드래프트 신청을 하자 과연 예전의 기량을 보일 수 있을지 반신반의하는 시선이 있었던 게 사실.
그러나 1999년 여자대표팀 코치를 할 때부터 장소연을 봐왔던 박 감독은 달랐다. 그가 개인사정으로 드래프트 신청을 안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남편까지 만나 설득했고 1순위로 꼽았다. 장소연은 기량은 두말할 것도 없고 코칭스태프와 선수들 가교 역할까지 1인 2역을 훌륭히 해냈다.
“제가 선수들에 대해 궁금한 거 있으면 소연이에게 물어봐요. 그리고 사니가 가끔 오버할 때도 있거든요? 그걸 또 소연이가 지긋이 눌러주죠.”
김사니도 장소연과 오랜 인연이 있다.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을 때부터 막내 김사니는 고참 장소연을 참 잘 따랐다. 이번에 장소연이 온다고 했을 때도 적극 찬성. 올 시즌 둘의 콤비플레이는 팀의 주 무기 중 하나였다.
“올 시즌이 정말 길었어요. 견디고 견뎌도 시즌이 안 끝나서 훈련 도중 운적도 있었는데 소연 언니가 잘 붙들어 줬죠. 후배들 이끌어야 하는 부담도 언니가 훨씬 덜어줬구요.”
신탄진 | 윤태석 기자 sportic@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사진 | 박화용 기자 inphoto@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