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 북] 허영만과 가출남들, 바다의 올레길 열다

입력 2010-07-16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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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올레길 개척을 위해 한반도 바닷길 일주에 나선 허영만과 13명의 중년남자들. 이들의 꿈을 싣고 달리는 요트 ‘집단가출호’의 3000km 항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일상에 지친 심신이 바다빛으로 여유로워짐을 느끼게 된다.

■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

요트에 꽂힌 허화백과 13명의 남자
한반도 해안선 일주 대장정 도전기
집단가출호에 꿈 싣고 누빈 바닷길
낭만·모험 출렁 3000km 여정 그려


2008년 겨울 서울 인사동 선술집 ‘식객’의 구석방에서 지인들과 막걸릿잔을 기울이던 허영만 화백은 혼잣말처럼 뜬금없는 화두를 던졌다.

“사실 길은 어디나 있잖아? 땅을 벗어나서 이번엔 바람으로 가는 돛단배를 타고 바다의 백두대간을 가는 거 어때? 서해에서 남해를 돌아 국토의 막내, 독도까지.”

이때 옆에 있던 히말라야의 사나이 박영석이 허 화백을 거들었다.

“파도와 싸우며 바람을 타고 독도까지∼ 야, 그거 좋은데요.”

그래서 쇠뿔은 단김에 뽑혔다. 한반도 바닷길을 무동력 돛단배로 일주하기로 결의한 14명의 중년 남자들은 건조된 지 15년이 지난 낡은 40피트급 레이싱 크루저를 사들여 배 이름을 ‘집단가출호’로 명명했다. 가출하는 각오가 아니면 독도까지 머나먼 바닷길을 갈 수 없다는 뜻으로 허 화백이 지은 이름이다.

여섯 달에 거쳐 배 수리를 끝낸 이들은 허 화백을 선장으로 정하고 2009년 6월 경기도 전곡항을 출발해 남해와 동해를 훑고 삼척에서 독도까지 1년간의 한반도 해안선 일주 대장정에 돌입했다.

‘허영만과 열세 남자, 집 나가면 생고생 그래도 나간다’(허영만·송철웅 지음)는 바로 이 남자들의 파란만장한 항해기를 담은 책이다.

바다에 관해서, 항해술에 대해서 백지 상태인 그들이 가진 거라고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어린 아이 같은 모험심과 신뢰로 도전한 우리 바닷길 3000km 일주의 기록이다.

전곡항과 삼척항의 육상 직선거리는 218km다. 자동차로 3∼4시간이면 주파할 수 있다. 이들은 바닷길로 돌아 1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고생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사실 이 모험에 참가한 14명은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짓눌리고, 어디서도 지친 영혼을 뉘일 곳을 찾지 못하고 사는 우리 시대의 평범한 중년 남자들이다. 일탈을 항상 꿈꾸지만 시간이 없고, 돈이 없다는 핑계로 아내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과 편한 잠자리를 버리지 못한다.

열네 남자들의 집단 가출은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다. 비록 그 경험이 힘들고 고될지라도 삶의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한 것만은 분명하다.

“돛을 올리고 로프를 묶는 게 너무 재미있어 이마에 피가 철철 날 정도로 다친 줄도 몰랐다”고 회상하는 허영만 화백의 말에서 항해가 주는 희열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회사와 일이 인생의 1순위였다가 어느 날 문득 ‘내가 제대로 살고 있나’라는 의문이 드는 대한민국 남자들에게 이들이 벌인 집단 가출은 통쾌함과 함께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열네 남자의 무모해 보이는 도전은 심리적인 대리 만족을 시킬 만하다. 힘들 이유도 없다. 편안하게 책장을 넘기기만 하면 이들의 집단 가출에 동참할 수 있다.

이길상 기자 juna109@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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