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꼬마 야구선수가 사직구장 마운드에 섭니다. 터질 것 같은 열기가 그 작은 몸을 휘감습니다. 쿵쾅쿵쾅. 3만 관중의 함성보다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립니다. 용광로처럼 들끓었던 1992년 10월 11일의 부산. 페넌트레이스를 3위로 마친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빙그레에 먼저 2승을 올리고 금의환향한 날입니다.
손보다 더 큰 야구공이 날아갑니다. 당당히 던지고 싶어서, 한 달 동안 장거리 시구만 연습했던 꼬마입니다. 낮게 떨어지는 볼이 포수 미트에 곧바로 꽂힙니다. “우와아! 저 꼬마 대단하네!” 탄성이 터집니다. 짐짓 어깨를 으쓱하면서, 꼬마는 다짐합니다. ‘어른이 되면 꼭 롯데 유니폼을 입고 말겠다’고.
18년이 흘렀습니다. 롯데 김사율(30·사진)은 “말로는 설명하지 못할 만큼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합니다. 롯데 자이언츠기 야구대회에서 우승하기 며칠 전, 감독님이 “열심히 하면 진짜 좋은 일이 있을 거야”라고 하더랍니다. 그 ‘진짜 좋은 일’이 바로 한국시리즈 시구였던 겁니다. “매일 스포츠신문을 달달 외울 정도로 야구에 빠져 살았어요. 그런데 시구를 하라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요. 프로야구 선수들을 가까이서 본다는 것만으로도 날아갈 것 같았죠. 너무 설레서 한 달 동안 잠을 설쳤어요. 하하하.” 학교도 난리가 났습니다. 김사율이 한국시리즈에 나온다고, 수업도 중단한 채 전교생이 TV를 봤습니다.
그 날 이후 처음입니다. 김사율의 포스트시즌. 지난 2년은 준플레이오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도 못했지만, 올해는 당당한 마무리 후보로 출전합니다. 1999년 입단한 그의 야구 인생에 가장 환한 빛이 비치려고 합니다. “사실 올해는 정말 절박했어요. 매 경기를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최고의 긴장감 속에 공을 던졌어요. 롯데 선수가 되겠다는 꿈은 이뤘지만, 아직 포스트시즌에는 한 번도 못 나가봤잖아요.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너무 늦어버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14일 사직 SK전. 김사율은 1992년의 올드 유니폼을 입은 채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삼진으로 잡았습니다. 롯데의 3년 연속 4강을 제 손으로 확정지은 겁니다. “그 때 생각했어요. ‘아, 이런 느낌이구나. 이런 감정이 내게서 멀리 있는 것만은 아니었구나’라고요.”
소중한 추억을 안고 마운드를 내려왔던 소년은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고 다시 마운드에 올라갑니다. 그리고 롯데의 김사율은 오랜 꿈의 마지막 한 귀퉁이를 채워넣습니다. 마침내 열리는 꿈의 그라운드. 그렇습니다. 가을입니다.
y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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